러브버그는 날고, 우리는 멈춘다

by 서담

며칠 전 저녁, 무심코 창문을 열어둔 것이 화근이었다. 방충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로 들어왔는지 러브버그 수십 마리가 천장에 붙어 있었다. 순간 경악했지만, 침착하게 대응했다. 방충망 틈새에 천연 살충제를 뿌리고, 서둘러 창문을 닫았다. 곧 방 안에도 살충제를 뿌리자 벌레들이 하나둘 힘없이 떨어졌다. 나는 한 마리 한 마리 조심스럽게 휴지로 집어 버리고, 바닥을 물걸레로 닦았다. 그래도 찝찝한 마음은 가시지 않아, 그날 밤은 아이들과 함께 안방에서 잤다.


다음 날 아침, 동네를 걷는데 인도 바닥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전날 밤 불빛을 향해 몰려든 러브버그들이 죽어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리 익충이라지만, 개체수가 지나치게 많고 모양새도 너무 징그러웠다.


얼마 전 유퀴즈에 나온 곤충학자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러브버그는 일주일 남짓의 짧은 생을 살며, 교미하고 알을 낳고 죽는다고 했다. 앞에서 끌고 가는 큰 놈이 암컷, 뒤에서 끌려가는 작은 놈이 수컷이라고 했다. 밝은 색을 좋아해서 흰 벽이나 조명 주변에 몰려든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된 내용이었다.


러브버그는 종족 번식을 위해서만 살다 죽는 셈이다. 그 사이에 유기물을 분해하고, 토양을 건강하게 만들며, 식물의 수정을 돕는다. 겉보기엔 혐오의 대상이지만, 생태계에 분명 기여하고 있는 존재다. 인간 중심적인 생각으로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되지만, 생태계에는 이유 없는 존재가 없는 듯 하다.


그 짧은 생을 오롯이 종족 번식에 바치고 가는 러브버그를 보며 문득, 인간, 그중에서도 한국 사회는 왜 그걸 미루거나 포기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는 일은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다. 각자의 인생과 자유,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의 무게 사이에서, ‘출산’은 때로 선택지에서 지워지는 항목이 되었다.


멸종된 생물들이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번식을 멈추지 않는다. 환경의 변화로 번식을 위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아 번식률이 낮아진다. 그러다 결과적으로 번식이 멈춘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생긴다. 이것은 능동적인 선택이라기보다, ‘생존 불가’ 상태에 처한 결과에 가깝다.


인간은 어떨까. 우리는 때로 의식적으로 ‘낳지 않음’을 선택한다. 생존이 아닌, 다른 것을 택한다. 우리는 왜 ‘생존 불가’라는 판단을 내린 걸까. 그 판단은 너무 늦은 절망일까, 아니면 더 나은 삶을 위한 마지막 저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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