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을 따라

by 서담

매년 연초, 다이어리 첫 장에 꼭 적어두는 말씀이 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편 3절)


올해도 그렇게 시작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의 ‘철’은 무엇인가?

이 시절에 내가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일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도 맞지만,

무엇이든 가장 좋은 때가 있다는 것도 진실이다.

요즘은 독서교육 관련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발달에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내용을 보며

아이들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존경하는 김미경 강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무언가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가다 보면,

다른 소중한 것들을 놓치게 된다.

결국은 그걸 다시 챙기기 위해

돌아와야 한다.”


그 ‘놓치게 되는 것’은 대부분 건강 아니면 가족이다.

나 역시 충분히 그럴 수 있었지만,

여러 상황이 나를 ‘멈추게’ 했다.

자의 반, 타의 반.

조금 느리더라도,

소중한 것들을 챙기면서 가는 길을 걷는 중이다.


회사 다닐 때,

높은 직급에 오른 여자 상사들을 많이 봤다.

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직접 아이를 돌볼 수 없었다.

부모님이나 도우미의 손에 아이를 맡겼고,

그 결과는 제각각이었다.

아이와의 깊은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는 걸

이제는 잘 안다.

각자가 무엇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가를 묻고,

그에 답하며 가는 것이다.


나의 답은 이것이다.

때론 억울하기도 했고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그런 결론을 내렸다.


일은 나중에도 할 수 있다.

아니, 아마 나중에도 꼭 해야 할 것이다.

단지 소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여와 자아 존중감을 위해서.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시절을 이렇게 정의했다.

내 야망은 잠시 미뤄두고,

아이들에게 집중해야 할 시간.

아이들의 삶에 밑바탕을 다져주는 시간.


그리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주는 사람에게 감사한다.

든든하게 울타리가 되어주는 남편.

그가 열심히 일해준 덕분에

나는 아이들 곁을 지킬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공부한다.

언젠가 남편이 일을 그만두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때는 내가 그를 먹여 살릴 수 있도록.

우리 부부의 바통은 그렇게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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