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 계란 한 판이면...
지옥철같이 앞에서 막고 뒤에서 밀어치 던 고3 교실에서 어느 날 문득 친구가 그랬더랬습니다 "우리 나이 계란 한 판이 되면 어떤 기분일까....."
signal ↗ ↘
M: 강승원 김광석... 의 그 노래
미국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그 친구나 저나 우리 모두 달걀 한 판밖에 안 되는 고작 그 나이가 되돌아온다면 지구가 뽀사질 정도로 신명 나게 살 것 같습니다.
도둑질 빼고 다 해보고 싶어요
돌아보면 그나마 서른 즈음이 가장 씩씩하고 무모하고 이쁘고 감성적이고 사랑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세상 제일 싫어하는 말이 추억이나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식의 도피성 발언인데, 백만 년에 한 번은 돌아갈 수 있을까.. 희망할 때도 있거든요.
내세도 이승도 없었다고 믿으므로 다시 태어날 리 만무하지만 거리에서 불쑥 서른 즈음의 청춘들이 주저 없이 고성방가 하거나 애인이랑 쌈박질을 하거나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윤기 있게 빨아먹고 있으면 눈물이 터지게 부럽습니다.
아무리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하느님과 타협을 해도 절대 되지 않을 것이 계란 한 판으로 돌아가는 일이니까요.
서른 노래를 가장 서른답게 우울하고도 슬프게 부른 광석이 형은 나의 두 번째 라디오 진행자였습니다. 우린 늘 자정이 넘어 방송국을 나왔고 근처 마포 호텔 커피숍에 가서 2차를 하고 어둠을 헤치며 오계 소년 소녀들처럼 귀가했죠.
다른 방송으로 떠난 뒤에야 형의 부고를 들었고 그래서 형이 떠날 즈음 곁에 없었습니다. 그러고 한참이 지나 방송국 선배 병률 시인이 그랬죠. "우리 도시락 싸서 광석이 형 보러 갈까.."
이전엔 오빠라고 부르던 광석 디제이를 그때부터 형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영화 속 송강호의 대사처럼 "광석이 형은 왜 그렇게 빨리 떠났을까...."
"우울한 노래를 들으면 슬퍼도 후련해질 때가 있지 않나요. 저는 노래를 만들며 삶의 고단함을 해소하는지도 몰라요. 개인적인 배설 같은 거죠.
기분이 너무 우울한 오후 4시쯤 썼다. 이후 가수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마지막 회 때 이 노래를 처음 불렀는데, 게스트로 나온 김광석이 곡을 달라고 해서 줬다."라고 한 음악감독 강승원의 회고는 찐입니다.
고령화 시대에 서른이란 보리 속대처럼 푸르게 날뛰는 청춘인 것을.... 요즘은 마흔/ 쉰 살도 청년처럼 사는데 우린 그때 왜 그렇게 울적했을까요.
우울이 아니라 어여쁜 나이를 보내는 성장통의 슬픈 색깔이었을 텐데...
서른 아홉 청춘에 지구를 떠난 체게바라는 초록 일기 한 쪽에 "오늘처럼 외롭다면 다시는 여행 길에 오르지 못하리라."고 썼습니다.
쿠바에 갔을 때 하늘부터 바다까지 온통 덮여있던 그의 얼굴을 보면서 <체>에게 계속 했던 말 "서른 살의 외로움이 얼마나 좋을 건데 이 양반아..." Bo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