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오프닝처럼

거꾸로 져야 낫는 병

by 봄작

쓰러지고 엎어지는 것도 모자라 숨이 끊어질 듯 아파야 다시 생각하며 뒤돌아보게 되는 병들이 있습니다. 사랑이 그러할 것이고 부질없는 인연이나 연민이 그러하겠죠. 아무리 애써도 머리에서 나가지 않는 (흡사) 곰팡이 같은 생각의 딱정이 말이지요

↗↘

M: jessica folcker-good bye


오래전에 본 독일 다큐가 있는데 (제목도 배우도 잊어진...) 노부부가 매일밤 잠들기 전 꿀을 한 스푼씩 먹어요.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잠들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삶의 마지막이 달콤하게 남고 싶어서, 그렇게 기억되고 싶어서"라고 답하더이다.

죽음이란 걸 생각조차 못하던 어린 나이여서 놀랍고 슬프고 또 슬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경 쓴 할아버지의 무미건조한 말과 옆모습이 심각하고 심란하게 기억에 박혔습니다. The Pianist2003

The Pianist200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 (The pianist 2003)에서 게토를 나와 유대인 가스실로 글려가던 주인공 가족이 광장에서 마지막으로 20 즈워티 ZLOTY를 주고 사 먹던 캐러멀 하나. 아버지가 작은 손 칼로 여섯 등분을 해서 가족 모두에게 귀하게 나눠주며 마지막 만찬인 듯 먹고 헤어집니다.

피아니스트의 가족이 생애 끝에서 아직 이별이 있기 전에 먹은 최상의 단맛은 어쩜 관객이 더 뭉클하게 삼켰을지 몰라요.

주인공 피아니스트는 살아남아 이 영화를 폴란스크에게 쥐어줄 만큼 회고에 찼지만, 그보다 진하게 남은 건 그가 끝내 소화시키지 못한 캐러멜이 아니었을지..

난 당신은 우리는 정말 죽어서도 생을 달콤하게 기억할 수 있을지..

김지하의 시 <칼아>가 와닿기도 하지요


"미련의 베를

오늘은 끊으리라"로 시작했을 때, 가혹하다 싶어 읽히지 않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죽음으로밖에는 죽음으로밖에는

씻을 수 없는 죄도 한 줄기 눈물로 씻겨내려

배신이 지혜로 패륜이

서러운 사랑으로 바뀌는 미련의..." 대목에서 무릎이 쳐집니다.


심하게 무거운 죄책감과 심각하게 버거운 미련과 후회가 산 넘어 산인 시간을 지날 때 동토의 계절은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겨울이 싫은 게 아니라 겨울이 가슴에 품고 뿜어 내는 냉기가 무서운 것이죠. 몸 안에서 띵띵 얼어서 절대 녹지 않는 연민처럼...


시인 김지하는 삶의 마지막을 어떤 맛으로 기억했을까요.

청년투사 김지하게 수인으로 있을 때 그의 갓난쟁이 아들을 업고 박경리 작가가 담장 밖에서 기다리는 장면을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김훈 한국일보 기자가...)

사위의 모든 것을 딸과 손주와 함께 지켜보던 박경리가 어린 아기를 등에 업고 그의 아비를 기다리던 겨울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편하다고 했던 박경리 선생님도 그의 사위 김지하 시인도 우리만 남아있는 이 생을 따뜻하게 기억해 주길....

삶은 어쩜 찻잎을 덖는 살청殺靑처럼. 청춘과 젊음의 호시절 같은 아름다움을 다 내려놓은 뒤에야 편안해지는 것인지도.. 그런 것이라고 가르쳐준 스승이었을 터..


난 아직도 내 아버지와 어머지가 세상에 없는 걸 감히 절대 이내 상상하지 못하고 사는 비현실주의지만, 그런다고 겨울이 뭐라 지랄을 하겠습니까. 수많은 나 같은 아들과 딸들에게 세상은 찻상 하나 같은 이파리를 떨어주겠죠. 푸른 청을 갈아내라고 그래야 산다고...

(이런 부질없는 명령어 같은 이라고) B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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