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오프닝처럼

세월은 유죄

by 봄작

눈부시고 찬연한 햇살이 부담스러워 나만 잿빛인가, 나의 동네만 응달인가 싶어 집니다. 하여 천천히 둘러보다 알게 되죠. 아! 오늘은 다 싫은 날. 싫어질 것 같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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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일들을 접어놓고 산다 해도 예전의 시간들이 소나기처럼 내리 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나의 심신이 아무 데도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대체적으로 그런 것들은 노래이거나 풍경이에요.

그때 그 노래가 주는 마력과 그때 그것과 비슷한 스케치 앞에서 몸이 움찔거리는 것을 어찌 막겠습니까. 어젠 노란 수국을 보았습니다. 꽃 수국은 푸른색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해픈 사랑인양 눈부신 노랑이라니.. 지는 모습이 얼마나 슬프려고 이렇게 화려한가 싶어 한참을 바라보다 생각났습니다.

"꽃대 끝에 한 개의 꽃이 피고 그 주위의 가지 끝에 다시 꽃이 피고 거기서 다시 가지가 갈라져 끝에 꽃이 핀다. 수국의 꽃차례이다."

대부분의 꽃차례는 경건할 정도인데 수국이 특히 그렇습니다. 흔적 없이는 어떤 순서도 내주지 않는 오만한 생계.

그것이 꼭 스승의 가르침처럼 몸소 해야 하는 것 같아 머리가 조아려지는 밤. 봄이란 얼마나 무색한 계절이 되는지요..

조악한 화분 앞에서도 기가 죽는 난, 이제야 청춘이 무너졌구나 싶습니다.

<삼십 대의 병력>에 충격을 가한 봄이 언제였나.



대체로 비가 자주 내렸다 우산은 잘 펴지지 않았고 사랑은 나를 찾아주지 않았다 인적 끊긴 밤길을 신파조로 걸었다 詩가 되지 않는 말들이 주머니에 넘쳤다 슬픔의 그림자만 휘청이게 하였을 뿐 달빛은 아무 보탬이 되지 않았다 맹세의 말들이 그믐까지 이어졌다...


(하략...)

이기선- 삼십 대의 병력病歷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외치며 스무 살 서른, 마흔 또 일흔을 가늠한다 한들 그 시절의 앓이와 치유와 또 아픔의 반복을 어찌 재생하겠습니까. 아픔의 강도를 몰랐을 때에 내리는 족족 맞는 비처럼 병치레를 했을 뿐인데. 그것이 젊음인 것 또한 이제야 아는 무식과 무지임을 B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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