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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May 07. 2024

'이제 건강은 괜찮아요?'

암경험자라면 받게 되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

"이제 건강은 괜찮아요?"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에게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나의 병에 대해 안다면 자연스러운 질문인 건 알지만, 뭐라고 답해야 할까. 짧은 질문 하나에 엉뚱한 사색이 꼬리를 문다. 


보기에는 누구보다 멀쩡한데, 이제 내 몸에 암순이는 없다고 믿고 있는데. 그렇다고 아직 완치 판정을 받은 것도 아닌데 내 마음대로 건강하다고 해도 되나. 그렇다고 건강하지 않다고 하기도 내키지 않는다. 도대체 ‘건강하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아, 질문을 탓하는 건 아니다. 그저 지금은 아프지 않은지, 괜찮은지를 걱정해서인 걸 아니까. 단어 하나에 그렇게 까칠하게 굴 필요는 없지 않냐고 유난스럽다 할지도 모르겠다. 뾰족하고 날카롭게 날이 선 게 아니라, 듣는 순간 마음이 그렇다는 거다. 애매모호하고 아리송한.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 질환이 있어도 꾸준한 관리로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이 딱히 이렇다할 병은 없지만 기력이 약하거나, 체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생각해보면 암이라고 의사에게 듣기 직전까지는 내가 봐도, 남이 봐도 건강했다. 건강검진상 신체나이는 4~5년 젊게 나왔고, 정기적으로 운동도 하고, 적정 체중에, 에너지는 하이퍼. 돌이켜보면 오만하지만 나름 ‘건강부심’으로 가득 찼었다.(훗, 난 너무 건강해!) 심지어 주위 사람들에게 제발 운동도 하고 몸 좀 챙기라며 훈수를 두기까지. 그랬기에 나의 암 진단은 주위에 꽤 쇼킹한 뉴스였다. 병 앞에 장사 없다는 단순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사실.


여하튼 쬐깐한 가슴 한 귀퉁이에 암순이가 있다는 사실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되다니. 아마 1~2년전 쯤부터 이미 야금야금 자리를 잡고 자라고 있었겠지. 거기에 그렇게 원래부터 있던 건데 존재를 인식한 시점을 기준으로 건강함과 건강하지 못함이 나뉘다니 아이러니하다. 실상 암진단을 받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매일 많은 암세포가 생겨나지만 사라지는 것 뿐인데. 여하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꽃>) 도 아니고 이건 뭐지. 꽃이라면 좋으련만.


오만한 건강부심에 기습 공격을 방불케하는 타격을 받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건강’의 의미에 대해서. 주위에 위기의 40대들은 죄다 건강검진에서는 재검사 내지 주의 관찰 항목의 개수가 매년 늘어난다. 이유 없이 피곤하고, 지치고, 여기저기 아픈 이들도 속출한다. 서서히 진행되기 시작하는 노화. 종족 번식이라는 위대한 인류적 사명을 마칠 즈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신체적 변화라고 하면 조금 위안이 되려나. 나이듦과 노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 사십대로서 건강을 바라보는 시작점이지 싶다.


각설하고 나 또한 암환자가 되기 전에는 암이라면 거동도 못하고, 다른 이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서글픈 모습을 상상했었다. 일상은 사라지고, 환자로서의 모습만 남는 슬픈 상황. 물론 많이 힘들고 아픈 경우도 있지만, 많은 암경험자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멀쩡하게 건강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젊은 암경험자는 암을 겪어도 연애, 학업, 취업, 결혼, 출산, 가족 부양 등등 주어지는 다양한 역할들을 묵묵히 하면서. 비록 나는 도전하지 못했지만, 항암 치료와 직장을 병행하며 씩씩한 투병을 하시는 분도 있고, 4기 유방암 환자로서의 일상 그대로 브이로그로 기록해서 희망을 주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기도 하고(유튜버 콩튜브님), 말기 암 진단 후 10년간 건강하게 지내면서 건강 관리 노하우를 공유하고 책을 내시기도 한다.(주마니아님, 책 <말기암 진단 10년,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병기가 높아도 장기간 무탈히 생존하는 암경험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암과 함께 조금은 특별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이어가는 많은 분들. 이들의 삶이 건강하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많이 아팠지만, 그래서 더 건강하다는 말이 역설적일까. 작년에 친한 지인이 뇌수막종 진단을 받았다. 어떤 전조증상도 없이 자다가 갑자기 발작이 왔고 수술을 했다. 식사도, 운동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40대 남자. 다행히 추가 치료 없이 회복을 한 뒤에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기초반부터. 그 뒤로 꾸준히 이어진 운동 습관. 식사도 예전보다 잘 챙겨 먹고, 일도 무리하지 않고 조절하고 있단다.


잃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가진 것의 소중함. 한 번 크게 아파보면 비로소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비단 건강 뿐 아니라 삶에서도 시련을 겪고 나면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는 것처럼.


이제 내 몸이 귀하다는 걸 찐하게 깨달았다. 평생 갈지는 모르지만, 가끔 한 번씩 느슨해지겠지만, 퍼뜩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마음을 다잡고 고삐를 조이며 살아야겠다.


‘건강은 괜찮아요?’

라는 짦은 질문에서 시작된 다소 맥락 없는 생각의 꼬리물기 끝에 찾은 대답은 이렇다.


잠시 많이 아팠지만 전 건강해요.
살다보면 또 다른 곳이 아플 수도,
혹은 다른 병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상황이 되더라도
저는 여전히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갈 거에요!


 Duckleap Free Resources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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