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형체

삶,이야기

by 아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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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 만에 미용실 의자에 앉았다.

외모를 가꾸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였지만

그게 이유는 아니었다.

너무 바빠 짬을 못 낸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마음이 너무나 가난했었다.


친절하게 둘러진 가운으로 내 스러진 마음까지 감춘 듯

편하게 자리에 앉았다.

파마약 냄새가 반갑다.


손에는 한강 작가의 책이 들렸다.

심적, 지적, 외적 충전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미용실 밖으로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천장 구석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최신 음악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평화롭게 바쁜 미용실의 토요일.


갑자기,

누군가 무리하게 끼어든 걸까.

예고 없이 정차하고 차에서 내렸나.


신경질적으로 눌린 경적 소리가 길게 터져나오며

미용실로 쳐들어와 음악까지 잡아 삼켰다.


나의 머리 위에서 바삐 손을 움직이던 헤어디자이너의 입에서

짤막한 한숨이 쏟아졌다.

아마 저런 일이 자주 있나 보다.


"뱉어낸 감정들은 상대에게 전이된다."


어디선가 이 말을 들은 후부터

밖으로 나온 감정들이 내 눈에 형체를 갖기 시작했다.


방금 그녀의 한숨은

츄파춥스 껍데기 쓰레기가 톡 던져진 듯 지나갔다.


내가 참지 못해 아이에게 버럭 하면,

나의 썩고 시커먼 감정 덩어리가 울컥 올라와

목숨보다 소중한 내 아이의 무구한 얼굴에 던져졌다.


아이가 원하는 걸 못해 인상을 쓰고

귀에 무척 거슬리는 쨍알거림을 쏟아낼 땐,

고 깜찍한 입에서 나온 한 뭉치 핀셋들이 내 피부를 할퀴고 지나갔다.


어떤 날은 폐기물 같은 감정이 나에게로 들어왔다가

다시 밖으로 흘러나가질 못해 내 안에서 부패하기도 했다.


이런 형체는 운전 중이 압권이다.


도로의 무법자 같은 운전자들은

거칠게 끼어드는 게 원래 버릇인지,

위급상황이라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차를 향해 곳곳에서 경적을 울려대면

거대한 분노의 화구가 그 소리를 타고 도로 위로 쏟아져 나온다.

분명 나를 향한 것이 아니지만 그 존재 자체로 나는 간담이 서늘해진다.


때로 조수석에서 그 분노를 다른 차에 폭격하는 신랑을 보노라면,

나는 전쟁 피난민의 마음으로

쏟아지는 총알 사이를 무력한 두 팔로 머리만 가린 채 도망하는 기분이었다.


감정을 형체화하던 것은 나의 분노를 아이에게 쏟지 않기 위한 나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만할 수 있는 노력을 해봐야겠다.


때로는,

요즘 들어서는 좀 더 자주,

그 형체들이 무겁다.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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