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극악을 직면한 그날

삶,이야기

by 아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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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유치원 차에 오르자마자,

나는 엄마의 가면을 내려놓고 음침한 골짜기를 향해 시동을 걸었다.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이 시원하게 높은 하늘이 유독 서러웠다.

나만 빼고 모두 오늘 맑음이겠지.


나의 욕심과 무지가 가져온 모래성 같았던 삶은

한 번의 파도에 무너져버렸다.


벼랑 끝에 선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이

오늘은 꼭 실질적인 무언가를 해야 했다.


불안하게 떨려오는 손이 라디오를 켠다.

마침 들려오는 누군가의 이별 노래가

마치 나의 인생을 애도하는 듯 느껴져 눈물이 터져 흘렀다.


운전을 해야 했기에 빠르게 소매로 눈물을 훔쳤지만 멈추질 않는다.

어미를 잃고 벼랑 끝에 선 짐승처럼,

두렵고 괴로운 신음 같은 울음소리까지 쏟아져 나왔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소실로 인한 고통의 울음인가.

아니면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은

자신을 향한 분노의 울음인가.

나는 알 수 없었다.


마음이 어지럽게 통곡하는 동안,

앞 차가 차선을 고민하느라 속도를 놓쳐 정지 신호에 걸렸다.

갈 수 있는 신호였기에 평소엔 짜증이 울컥했을 상황.


하지만 오히려 잠깐의 쉴 수 있는 숨을 얻어 감사했다.

원치 않는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지금,

누군가의 손길로 브레이크를 밟아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건 뼈를 깎는 고통으로 새겨지는 교훈이다.


복잡한 골목을 지나,

작고 오래된 공영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미 만차.


비상깜빡이를 켜고

누군가 빠지기를 기다렸다.

기적처럼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자리가 났다.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나의 가시밭길은

그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에필로그.

날이 맑을 때면, 그 맑음이 내게는 허락되지 않은 자격처럼 느껴졌다.

이마가 절로 찌푸려졌다.

나만 빼고, 모두 걱정 없이 웃고 있었다.

나만 빼고, 모두 주머니에 돈이 두둑해 보였다.


그러다 흐린 날이 오거나, 아니, 비바람이라도 거칠게 몰아치면

그때야말로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이 배려 없는 매서운 날씨의 고통을,

배 따시고 마음 편한 너희도 좀 느껴봐라.

악마 같은 카타르시스였다.


나는 단지 삶을 좀 잃었을 뿐인데,

마치 악마에게 모든 걸 빼앗긴 인간으로 수집된 듯.

내 안의 비틀린 입이 벌어지고, 극악들이 타인을 향해 저주처럼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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