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과 글, 나를 구한 두 번의 폭발

엄마도가끔운다

by 아슈엔

나는 서른여덟에, 노산으로 첫째를 낳았다. 둘째는 마흔하나에...

친정 부모님이 가까이 사셨지만, 늘 바쁜 신랑 탓에 주말조차 독박인 날이 많았다.

자책과 후회, 불안이 높았던 나는 육아를 하며 속이 썩고 상했다.


어느 순간, 우울과 울화가 내 감정의 대부분을 잠식해 버렸다.

벼랑 끝에 선 듯한 날들.

그리고 어느 날 확- 그 벼랑에서 내가 나를 밀어버릴 것 같은 느낌.

내 안의 뜨거운 무언가가 터지지 못해 차라리 나를 안에서부터 녹여 삼킬 것만 같았다.


뭐라도, 어딘가 가서 흠씬 두들겨 패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불현듯 떠오른 샌드백.

그 즉시 동네 복싱장에 등록했다.

그렇게 새로운 1년을 보내며 폭식으로 찌운 살도 좀 빠지고

눌리고 썩어가던 자아를 조금씩 건져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복싱을 가려 했음에도

애들 방학, 아픈 날, 일정 있는 날... 못 가는 날도 제법 많았다.

복싱을 쉬는 날만큼 내 안엔 또다시 울화가 차올랐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무아지경으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육아에 대해, 사랑, 연애, 픽션, 인생...

주제는 일관되지 않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 하나.


영화 포레스트 검프.


다리 교정기를 찬 어린 검프가 늘 괴롭힘을 당하다
어느 날, 아이들이 돌을 들고 쫓아오자
겁에 질려 교정기를 찬 채 어기적 도망치기 시작한다.
걷기도 힘든 그 다리로.
하지만 극도의 두려움에 밀려 그는 점점 속도를 내고
결국 교정기가 부서져 나가며 정상적인 다리로,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 그 자리를 벗어난다.


그게 바로 나였다.

나를 가두던 자아비판의 창살이 깨지고
나는 날아오르듯 달리기 시작했다.

글을 쏟아내며 울화가 터져 사라지고 숨통이 열렸다.


심지어 세상 밖에 나가 뭐든 잘할 것 같은 그 근자감 넘치던 스물셋의 내가 돌아온 기분이었다.

도파민이었다.


글을 써내며 나는 내가 몰랐던 나를 보았다.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가 다시 보였다.
막막하기만 하던 미래가 조금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


내 글을 보며 깊은 밤, 혼자 깔깔, 꺽꺽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렸다.

살기 위한 발버둥으로 시작된 글쓰기는 이젠, 나를 지키는 안전장치가 되었다.


너를 깨닫고, 너를 시작하게 되어 참 감사하다.

오늘도 녹록지 않은 하루였지만, 이 글을 쓰며 나는 다시금 내일을 기대하며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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