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의기록
던전의 바닥에서 자라난 돌기둥처럼 솟아오른 책들,
원고지와 팔 하나 뉘일 공간만 남은 책상 위,
멈춘 시간 사이로 빠르고 집요하게 흔들리는 펜 머리.
서재 가득 온 우주의 소재가 조이트로프처럼 돌아가고,
그의 호흡으로 끌어온 시대와 사람들이
펜을 따라 종이 위로 흘러들었다.
병렬된 시간 위에 흩어져 있던 인물들은
펜이 종이를 스칠 때마다
바람, 핏빛, 발자국, 숨소리들과 함께
층층이 쌓여 이야기가 되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들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만들어낸 장엄한 은하.
펜 끝으로 세상을 긁어내는 소리만 가득한 방 안에서,
빛도 없던 우주가 조용히 그리고 끊임없이
오늘도 그의 손으로 흘러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