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이 사라진 시대,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생각기록

by 유희

사람의 기억은 그저 기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기억은 과거, 현재, 미래가 늘 함께한다. 내가 지금 현재에 존재한다고 하여, 현재만 사는 이는 거의 없다. 누구나 다 과거의 조각들과 미래의 희미한 파편들 사이를 떠다닌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안을 느끼고, 그것을 해소하길 바란다. 세계의 수많은 현자들이 현재에 존재하라고 조언을 했지만, 사람에게 그것은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첫째로, 우리의 뇌 체계가 그렇게 되어있지 않고, 둘째로, 현재에만 존재하기에는 현대에 너무 많은 정보들이 존재한다.


sns만 켜도, 유튜브만 켜도, 우리는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은 비교의 동물이기에, 그 안에서 자기의 자리를 찾으려 애쓴다. 자신만의 것을 찾지 못하면 도태되는 생태계가 되어버렸기에, 우리는 이를 악물고 우리 자기만의 것을 찾으려 애쓴다. 생존경쟁이다. 그러나 상대는 전 세계. 절대 쉽지 않다. A를 이기고 나면, B가 나타나고, B를 이기고 나면, C가 나타난다.


불안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는 것 같지가 않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소비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소비하였는데도, 결과가 따라오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탓한다. 심각한 자기 소모사회다. 또한, 패러다임이 사라진 시대임은 틀림없다. 따라야 할 것들을 잃어버린 청춘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욕망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욕망하고, 자아는 비대해진다. 타인의 삶을 시기하며, 아이러니하게도 그 타인의 삶을 동경하여 그렇게 되길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났다. 같아질 수 없다. 그렇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하며, 또 하나의 불행과 불안이 잉태된다.




며칠 전, 나는 복잡한 서울살이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으로 훌쩍 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다. 그래봐야 주말 하루였지만, 나는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다. 나를 괴롭히던 수많은 소음들로부터 벗어나, 한적한 동네의, 한적한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와 빵을 먹으며, 글을 썼다. 드디어 나로서 존재하는 기분이 들었다.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나니, 벌거벗은 내가 보였다.


나는 자크라캉의 말처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있었다. 내가 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되고 싶어 했으며,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계속 방황했던 거였다. 사실 답은 늘 내 안에 있었는데. 쓸데없는 두터운 먼지가 그 보석을 감싸, 돌처럼 보이게 했다.


어쩌면 이 시대의 사람들, 특히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하기'가 아니라, '덜어내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 사회에서 우리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애쓴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스펙을 쌓아, 좋은 직장을 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경쟁은 끝이 없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과 가치는 끝없이 변화한다. 그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그 가치에 끌려다닐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고, 더 해내는 것이 아니다. 욕심을 덜어내고, 욕망을 덜어내고, 우선 자기 자신의 솔직한 모습부터 바라보아야 한다.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욕망하는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더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 공허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 시대를 함께 방황하는 청춘이기에, 명확한 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어느 방향성을 가져야 할지는 알겠다. 위처럼, 너무 많은 것들을 욕망하기 전, 그것이 정말 내 욕망인지 질문해보는 필터링 과정을 거칠 것. 그 후에 시도해도 늦지 않다는 것. 그것을 잊지 않기로 하자. 타인의 삶이 아닌, 나의 삶을 살아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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