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내성적이었던,

나의 내향성을 받아들이기까지.

by 유희

나의 내향성에 대해서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내향적인 성격인지, 내성적인 성격인지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사회에서는 외향적인 성격을 선호했고, 나도 그에 맞추어 조금씩 변해갔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경험을 떠올려보면, 나는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다. 잘 웃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혼자 하는 생각들이 참 많고, 소수의 친밀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선호했다. 누군가가 내 칭찬을 하면 쉽게 부끄러움을 탔고, 또 새로운 환경에 적극적으로 적응하기보다는, 움츠려 들곤 했다. 또, 누군가가 지나가며 한 말에 쉽게 상처를 받아, 며칠 동안 신경을 쓰기도 했다.


그러던 나를 바꿔준 건, '춤'이었다. 춤을 추고 나서부터는, 성격이 조금씩 변했다. 춤으로 인해,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열정과 적극성을 배웠다. 선천적으로 예민하고 생각이 많던 나를,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살도록 해주었고, 또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에 대해서도 알게 해주었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춤은, 가끔 나를 힘들게 하기도 했었지만, 어쩌면 처음 사귄 친구 치고는, 참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춤을 춘 후부터 만났던 친구들은, 아마 나를 외향적인 아이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내향성과 외향성 중 하나를 타고난다고 했다. 그 후에 학습하는 건 가능하지만, 본래 자신이 갖고 있던 성질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난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갖고 있던 그 '내향성'에 대해, 숨기려고만 했던 그 내성적인 성격에 대해 더 알아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내향성'이라는 것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내부의 주관적인 것에 삶의 방향과 가치를 두고 자신의 내적 충실을 기하려고 하는 성격 경향'. 음. 나다. 반박할 수가 없다. 그 생각은, 중학교 때를 생각해 보면 더 확실해진다. 가사와 글이라는 것을 제대로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나의 내면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는지, 어떤 사람으로 살고, 기억에 남고 싶은지 따위를 생각했다. 어쩌면 애늙은이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껏해봐야 열넷 열다섯인 녀석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자기의 철학과 생각들을 글로 쓰고 다니니 말이다. 좀 웃겼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친구들과 노는 것도 좋아했지만, 나는 자주 글을 쓰며 내 세게 안으로 숨었고, 그 순간이 안전하다고 느꼈다. 또, 음악을 듣는 것도 그 행위 중 하나였다. 그렇게 내 세계 안으로 들어가고 나면, 안락했고, 편안했다.


나는 이제 나의 내향성이 싫지 않다. 가끔, 생각이 지나치도록 많고, 널뛰기하는 감정에 피곤할 때도 있지만, 결국 그 넘쳐나는 생각과 감정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이 많지 않았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며, 춤을 추면서 해방감을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 내 세계 안으로 도피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면, 나는 음악을 그토록 깊이 느낄 수 없었을 것이며, 책과 영화 속에 완전히 빠지는 일도 없었을 테다. 가끔 친구들이, 내가 내 얘기를 너무 안 한다거나 하는 것에 서운함을 느껴, 미안함을 느끼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편안한 소통 방법은, 직접적인 말보다는, 정돈이 된 글이나 가사, 은유적인 춤이나 음악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것들이 더, 진심을 전달하기에는 유리하다 생각한다. 말에는 의심들이 가득하고, 숨기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친구들과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내가 참 모순적이다.)


내가 갖고 태어난 '내향성'과, 내가 학습한 '외향성'. 모두,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나의 내향성은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을 도와주었고, 학습한 외향성은 타인과의 소통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두 특성 모두, 장단점이 있고, 나는 그들의 좋은 면들에 대해서 참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앞으로도, 나만의 내향성을 잘 개발해서 나의 세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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