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이면에 대하여
*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은 글쓴이의 개인적 견해가 가득한 글임을 밝힌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기는 했지만, TV 속에 빛나는 아이돌이나 연예인들을 보면, 늘 동경의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나에게는 10살 위의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로부터 케이팝 조기교육(?)을 받았다. 언니는 동방신기와 빅뱅을 좋아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언니의 방에 들락날락하며 언니가 보는 그들의 뮤직비디오와 음악, 또 브로마이드를 보게 되었다. 2ne1과 빅뱅, 또 음악방송에 나오는 많은 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춤을 따라 하며 자랐다. 그들로 인하여 나는 음악과 춤을 알게 되었고,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화려함 뒤에 감추어진 어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 그 이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던 첫 번째 사건은, 너무나 빛이 나던 한 스타의 극단적 선택 소식이었다. 거짓말 같았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아니, 그렇게 빛이 나는 사람이, 대체 왜? 그의 유서를 읽어보았다. 당시 열일곱이었던 나에게는, 그 말이 마치 암호해독을 위해 쓰인 글 같았다. 중학교 시절부터 그가 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그의 깊은 생각에 대해서 감탄하기도 했었고, 또 잠에 잘 들지 못하던 나에게 그의 잔잔한 목소리는 자장가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죽었다.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그 후로도, 충격적인 사건은 끊이지를 않았다. 연속적으로 스타들의 죽음 소식이 들려왔고, 어린아이돌들의 성, 마약 관련 문제들이 계속해서 불거졌다. 내가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환상을 현실이라고 믿었던 것의 벌이었을까? 나는 엄청난 상실감에 허우적댔다. 마치 강물에 빠져서 물장구를 치고 있는데, 물살이 점점 더 나를 늪으로 끌고 가는 기분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 나는 그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며칠 전 있었던 또 한 명의 스타의 죽음 소식이, 촉매제가 되었다. 이건 분명 뭔가 잘못되었다. 일그러졌다. 정상이 아니다. 고쳐야 한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고통받고 아파하는데, 어떻게 그대로 놔둔다는 말인가? 문제를 파악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당장 고치진 못하더라도,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을 그렇게 궁지로 내몰았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우선 첫 번째, 그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것들을 감당해야 했다. 나는 이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본다. 옛말에, 소년등과일불행(少年登科一不幸)이라 했다. 중년상처와 노년궁핍만큼 인생에 큰 재앙이, '소년등과(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함)'라 했던 것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큰 성취를 해버리면, 주변의 시기 질투를 사기가 쉬우며,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려워진다. 다들 나의 명성만 보고 오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며, 나의 방식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확고하기에, 다른 삶의 방식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아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좋아 보일지 몰라도, 그것을 언제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마약이나 성 관련 문제에 빠지기도 쉽고, 그것이 내면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의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아정체감'의 상실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인 '에리히프롬'은 말했다. 인간은 이 '자아정체감'이 없으면 미쳐버린다고 말이다. 내가 명확하지 않으면, 타인과, 세상과 관계 맺는 것이 어려워진다. 중심이 없기에 쉽게 흔들리고 불안하다. 툭 치면 쓰러질 뿌리 없는 식물과도 같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이것을 키우기가 쉽지가 않다. 그 이유를 3가지 추려보겠다.
1. 자아정체감이 형성될 시기인 청소년기를 제대로 즐기지 못함
: 아이돌은 보통, 아주 어린 나이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서 데뷔한다. 연습생 생활은 틀이 짜여있는 생활이다. 스케줄대로 행하지 않으면 해고된다. 회사 안은 하나의 사회생활이며, 아이는 어린 나이부터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방법을 습득한다. 이것이 문제인 이유는, 자아정체감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에게 자신을 맞추는 법을 배운다는 점이다.
2. 악플, 회사의 지나친 피드백, 지나친 대중의 관심
: 세상에 알려지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해 주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증오하고 혐오한다. 그 비난의 세례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 따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형성되지 않았을 때는 그 과정이 지옥과도 같을 것이다.
3. 살인적 스케줄과 끝없는 비교 경쟁
: 그냥 직장인들도, 아니, 알바만 해도 과로를 하면 한껏 예민해지거나 삶에 대한 회의가 든다. 그런데, 그들은 성수기가 되면 쉴 틈이 없이 일한다.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식욕과 수면욕조차 제지당한다. 이는 정신적 피로를 더 극대화한다. 게다가 아이돌은 늘 순위에 예민하다. 돈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할 부분이 있다. 케이팝 산업에서의 시장가치란 무엇일까? 잔혹한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음악성이나 진심 따위가 아니다. 1순위는 무조건 '외모'다. 아이돌(Idol)은, 말 그대로 '우상'이다. 환상을 파는 직업이란 말이다. 그 환상에는 아름다운 면도 있지만, 인간 내면의 추악하고 비밀스러운 면도 존재한다. 어리고, 예쁘고, 잘생긴 애들이 춤과 노래를 한다. 사람들은 그걸로 만족을 얻는 것이다. 물론 그 외에, 좋은 가사들과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되는 메시지 전달이 있을지는 몰라도, 우선적으로 아이돌 본인이 행해야 하는 것은 '외적인'능력의 수행이다. 이 점에서, 정말 음악과 춤이 좋아해서 시작했던 친구들은 허무함이나 공허함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엔터계에 있던 친구들의 말을 빌려보자면, 회사에서는 연습생이나 아이돌을 '상품'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쨌든 사람을, 그 사람의 이미지를 팔아먹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는 철저히 회사에서 기획될 수밖에 없다. 회사는 이익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직원들 월급을 주어야 하는데, 사장 입장에서는 당연히 위험을 최소화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상품이, '어린', '아이들'이라는 데에 있는 거다.
참 무서운 것이, 아이들은 쉽게 환상을 품기 좋은 존재들이라는 거다. 누적된 사회경험이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보이는 그 그대로를 믿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기에 더욱더, '좋은 어른'이 필요한 것이다. 보다 더 좋은, 올바른 방향에 대해서 심사숙고하여, 아이들을 그 방향으로 지도해 줄 어른 말이다. 내 오랜 친구가 말했다. 세상에는 그런 어른 1명만 있어도, 그 어른으로 하여금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아이들은 10명이 넘을 거라고 말이다.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이나,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 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삶을 응원해 주는 좋은 어른 한 명만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또, 많이 힘들어했던 그 아이들에게도, 그런 어른 한 명만 있었어도,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관련 교육들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나는 이 산업에 그렇게 좋은 어른들이 많은지는 잘 모르겠다. 아주 소수쯤 될 거라고 생각이 든다.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목표인 학교마저도, 이러한 실정이었다고 하는데, 대체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하는 걸까? 아이들이 기댈 곳은 어디인가? 실제로 내 지인 중에서도 예중, 예고, 예대에서 말도 안 되는 폭언이나 폭력을 듣고 보았다는 사람들이 전혀 적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그때 받은 상처들이 어른이 된 지금도, 너무나 아프다고 말한다. 이건 비단 대중예술뿐 아니라, 순수예술 쪽에서도 많이 들리는 말이다. 내가 궁금한 건 그것이다. 이 상처는 대체 누가 보상해 주지?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순수예술 쪽, 특히 무용 쪽에서 가해지는 교육을 빙자한 폭력들이 참 많은데, 가장 흔한 건 '언어폭력'이다.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돼지', '대학 안 가려고 그래?라는 식으로 몰아붙인다. 대학마다 원하는 몸의 모양이 있어서, 그 모양에 자신의 몸이 맞지 않으면 지원조차 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 무용계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다. 그렇게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과연, 자신이 갖고 태어난 몸에 대해 긍정적 시선을 가질 수 있을까?
음악이라고 다를까? 그렇지 않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음악중점학교를 나왔고, 그 덕분에 클래식 음악을 하는 친구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들은 늘 경쟁 속에 있었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그들 뇌리를 가득 채웠고, 매번 1등을 하던 아이가 부상이라도 당하는 날에는 마냥 위로를 하고 슬퍼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내 자리가 생긴 거니까. 그래서 그들 반 앞을 지나갈 때면, 알 수 없는 한기가 맴돌곤 했다.
그들이 나빠서 그런 것인가? 그들이 못돼서 그런 것인가? 난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겨우 중학생, 고등학생이다. 그들에게 그러한 생각들 심어준 어른들에게 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는 적이고, 이겨야 하고,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마치 진리인 것처럼 주입하여, 조금이라도 뒤처지거나, 맘에 들지 않는 날에는, 자기 자신을 학대하거나 미워하게 만든다. 이는 현대사회의 아주 흔한 현상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다움을 추구해야 할 예술계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니, 매우 한탄스러운 마음이다.
또한, 내가 가장 이해 안 되는 것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인 '학교'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고, 그들에게 인간으로서 살아갈 지혜와 능력들을 가르쳐야 할 선생들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주범이 된다는 게, 너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
그렇다면 오디션 프로그램은 어떨까? 공정했을까? 역시나, 그렇지 않았다. 몇 년 전, 한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인 <프로듀스101>조차, 흔히 'PD 픽'으로 불리는 PD의 만행으로 인하여, 연습생들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었다. '국민 프로듀서'라는 말도 웃긴 말이 돼버렸다. 애초에 '국민'들에게는 선택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안타까운 사람들은 누구인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임한 연습생들만, 아이들만,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다.
아이들은 무한 경쟁 속으로 자신을 내던졌지만, 그곳에서조차 공정한 경쟁을 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엄청난 상실감과 무력감이 밀려올 것이다. 상실감과 무력감은 우울감을 불러오고, 그 우울감은 자기 비관과 극단적 선택을 낳는다.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이 자신들의 가벼운 선택들에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다른 사례들 - 과한 노동 (과로)
한국의 케이팝 산업에 일어나는 일들이, 비단 한국만의 일일지, 궁금해졌다. 한국의 케이팝 산업은 미국의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일본의 아이돌 문화에 큰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없었는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도 역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매우 유명했던 뮤지컬 드라마 <Glee>에 출연했던 청춘스타 3명이 잇따라 죽음을 맞았다. 하나의 원인을 정의 내릴 순 없겠지만, 이거 하나는 명확하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지나친 노동력 강요가 영향을 미쳤을 거란 것.' 다큐를 보면 그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Glee>의 배우들은 일주일에 72시간의 노동을 강요받았으며, 쉴 틈이 없이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고를 반복했다고 한다. 스태프들도 다르지 않다. 배우들이 연기하기 위해는, 당연히 조명과 음향과 촬영 모든 것이 있어야 했을 테니까.
그 사례가 떠오른다. 영화 <바빌론>의 한 장면 말이다. 한 스태프가 찜통 같은 박스 안에 들어가서 영화를 찍는 일을 하다가, 결국 더위로 인하여 사망했던 그 장면 말이다. 이 얼마나 허무한 죽음인가. 정말 이게 말이 되나? 이 이후로 노조라는 것이 형성되고, 한 달에 얼마 이상 노동을 하면 안 된다는 법규들이 생겨나기는 했지만, 그것이 현재 한국 K-pop 시장에서도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뒤처지면 기억될 수 없다'라는 게 너무 확실한, 그것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많고, 또 트렌트가 너무나 쉽게 바뀌는 이 한국에서, 가장 트렌드에 민감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과연 이 법규를 잘 지키며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이건 다른 얘기기는 하지만, 각종 숏폼 콘텐츠들과 챌린지들이 빠르게 유행하고 버려지는 것도 이 사회 현상의 반증이라고 본다.) 도리어는, 그건 AI 아이돌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라는 회의적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능력주의와 끝없는 경쟁 사회, 자본주의 시스템이, 심각한 '자기 소모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긴 했지만, 이것이 극대화되는 산업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인 것 같아서 참 착잡한 마음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더 이상 이 시스템으로 인하여 희생되는 아이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지만, 사실상 그것이 가능한 일일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려면 이 산업의 아주 근본적인 것부터 바뀌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면 또 이 산업이 존재하는 존재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산업의 문제는 산업적인 면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있는 이데올로기와 현상들로 촘촘하게 연결되는 문제이기에, 그 산업에 들어간 이상,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럴 때의 해결 방안은 은근 단순할지도 모른다. 결국 '사람'의 문제이기에, '사람'을 '사람'으로 들여다보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완벽한 이미지'를 파는 아이돌들을,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바라보는 일이, 쉽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사람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이 상품이 되는 게 이 엔터테인먼트의 기본 약속이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본인도, 타인도. 그 사람으로부터 창출될 수 있는 단편적인 (혹은 잘 팔리는) '이미지'를 파는 것이다. 사람은 그 누구나, 입체적이고, 복잡하며, 단 한 마디의 말로 정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 사람의 '일부'는 정의할 수 있어도, 전체를 정의하는 것은 누구나 불가능하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이 산업의 종사자들도, 이 산업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혹은 이 산업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도, 조금은 자기만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극복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걸어본다.
불가능한 소망이더라도, 더 이상의 희생자가 없기를 바라본다. 먼저 떠난 이들의 명복과 안녕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