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지 않아도 빚 독촉으로 시달릴 일은 없지만 체면이 있지 인간이 되어 어찌 짐승에게 빚을 지고 살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갚으려고 새우깡을 한 봉지 사서 여주를 다시 찾아가긴 했다. 1년이 지나 생사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2021년 여름, 양평에서 여주 강천보까지 남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 여주 신륵사 강변공원 벤치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5미터쯤 되는 거리에서 갈색과 검은색의
토끼 두 마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어느 순간 서로 등을 마주하고 서 있는 장면이 보였다.싸움이라도 해서 서로 틀어졌나.
순간, 머리에서 무언가가 번쩍했다. 스마트 폰을 집어 들고 잽싸게 그 장면을 폰 속에 집어넣었다.
낯익은 장면이었는데. 어디서 보았더라.
두 마리 토끼를 사람의 형상으로 대체해 보았다. 남자와 여자, 부부, 연인, 친구...
그 상황에 맞을 다양한 관계가 떠올랐다. 느낌을 폰 메모웹에 기록했다. “부부”라는 제목의 디카시 한편이 완성되었다. 연인이나 친구라 해도 틀린 건 아니지만 부부가 가장 어울려 보였다.
이 작품으로
다음 해 디카시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운좋게도, 토끼들이 의미있는 포즈를 취해주어 상까지 받게된 것이다.
일상에서 디카시를 즐기기 시작한 지
꽤 되었다. 우연히, 디카시란 문학 장르가
있음을 알고 반가웠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찰떡궁합이라 생각했다. 많이 걷다 보면 많이보고 많이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디카시는 자연이나 사물을 보고
느낌이 오면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방식이다.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 폰만 있으면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걷다 보면 디카시 한편이 거짓말 같이 나왔다. 혼자 즐기는 게 아까워서 거의 매일 한편씩 SNS에 업로드했다. 매일 쓰다 보니 글이 조금씩 나아졌다. 모든 글이 그러하듯이. 디카시가 무엇인지 모르는 지인들에게는 한바탕 즉석 강의를 하고 같이 즐기자고 꼬드겼다.
사진 찍는 거 즐기시죠? 꽃과 사람만 찍지 마시고 느낌 오는 건 무엇이든 찍어보세요. 그러고 나서 왜 그런 느낌이 왔는지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세요. 어떤 글이든 작품이 되려면 상상만큼 중요한 게 없거든요. 무엇과 연결되나 상상해 보시고 그걸 글로 풀어보세요. 첨부터 잘 쓰겠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시 쓴다고 생각하지도 마시고요.
힘이 들어가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으니까요. 즐긴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하시면 작품이 나올 거예요. 다른 분들은 어찌 표현했나 인터넷에서 찾아도 보시고요. 작품을 주위 분들과 공유해 보세요. 대화거리가 많아질 거예요. 만족스러운 작품은 좀 늦게 찾아와도 일상은 조금씩 행복해지실 거예요.
디카시가 무슨 뜻이냐고요?
디지털카메라에서 디카와 시의 합성어로
자연과 사물을 보고 생긴 시적 감흥을 다섯 줄이내의 문자로 표현하는 겁니다. 디카시가 추구하는 것은 “순간포착, 순간언술, 소통”이죠. 자연이나 사물이 말을 걸어올 때 못 본 체하지 마시고 대답을 하세요. 사진을 찍고 느낌을 문장으로 만들어 보시라고요.
그 다음엔지인들과 공유하는 겁니다. 사진만 보내는거하고 차원이 다르다구요.
그래도, 시인데 사진 찍고 느낌만 표현하면 되냐고요? 네, 네. 일단 그렇게 시작하세요. 하지만, 상상을 많이 해야 좋은 작품이 될
확률이 높아요. 눈에 본 것을 그대로 표현하기보다는 그 너머에 무슨 의미가 있을지 상상하고 표현하면 좋은 작품이 되죠. 위트와 재미를 품고 있을 정도가 되면 잘 쓰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