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요즘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
곡소리 내며 눈뜨는 아침, 털어 넣는 모닝커피, 저녁 장보기, 그리고 잠들 준비까지. 혼자서도 해오던 일들을 누군가와 나누며 틈틈이 웃고 떠들 수 있다면 삶이 조금 더 둥글고 따뜻해지지 않을까.
물론 생각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소한 일로 다투기도 하고, 서로의 다름에 상처받는 날도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며 힘든 일은 상의하고 같이 견뎌내며 살고 싶다.
우리 부모님은 사이좋은 (?) 잉꼬부부다. 엄마는 부잣집의 백옥 같은 딸로 자랐고, 아빠는 시골에서 경운기를 몰며 시꺼먼 청년으로 자랐다. 결혼 당시 아빠의 통장에는 20만 원이 전부였다. 결혼 후엔 엄마가 가정을 이끌며 고생을 많이 하셨다.
한 번은 엄마에게 왜 아빠와 결혼했느냐 물은 적이 있다. “엄마만 바라보고, 늘 옆에 있어줄 것 같았거든.”
결혼한 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아빠는 여전히 엄마에게 “사랑한다”, “예쁘다”를 입에 달고 산다. 때로는 본인 마음을 충분히 몰라준다며 토라지기도.
아무튼 나는 그런 아빠의 다정함과 따뜻함, 엄마의 츤데례를 보고 자랐다.
살아보니 내 세대의 결혼은 조금 다른 것 같다. 혼기의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내겐 이미 지난 일일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현실의 저울 위에서 30대 여성의 삶엔 생물학적 시간과 사회적 시선이 잔인하게 작용한다. 그러니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누군가 나를 좋아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까?’ 하며 나 자신과 타협하려는 게 씁쓸하다.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 다시 만나보자고 연락이 왔었다. 그가 나를 좋아해 주는 마음이 고마워도 “그러자”라고 선뜻 말할 수 없었던 이유는, 마음은 둘째치고 서로의 상황과 능력 부족. 내가 말하는 ‘능력’이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뜻한다. 그런데 그 무엇 하나 가능하지 않았다.
닮긴 했지만 나는 우리 엄마가 아니고, 그도 우리 아빠가 아니다. 그들의 삶을 본 자식으로서 나는 엄마처럼 살 자신이 없고, 내가 겪었던 고생길에 내 자식을 다시 세워두고 싶지 않다.
타협의 흔적.
슬프게도 여자로서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더군다나 밖에 잘 나가지도 않고 또 먼저 말도 잘 걸지도 못하는 나를 좋아해 줄 사람이 과연 또 있을까.
… 다시 한번, 부모님은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