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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Dec 14. 2023

아버지의 뒷모습-5

매일 아침마다 아버지는 목욕탕에 가신다.

찬물 더운물 번갈아 들어갔다 나오는 냉온욕을 즐기시며

아침 운동 후 매일 목욕탕에 들렀다 오시는 게 일과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나는 말이지,

목욕탕에서 아들내미가 등 밀어주는 거 그게  참 보기 좋더란 말이지.ㅎㅎㅎ``


살짝 배어있는 이마의 땀을 닦으시며 아버지는

가끔 그런 말씀을 하곤 하셨다.

딸만  셋뿐인 장남으로


여전히 가부장적 사고에 매여계신 아버지는,

말은 없으셨지만

내 대에서 대를 잇지 못한 데 대한 약간의 죄송함은 가지고 계셨던 듯했다.


한창 사회생활에  열심이던  40대 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게 말이지,

대를 이어야 하는데 말이지,

회장님은 딸만 셋이니

그게, 말이지``


주변에서 참견하기  좋아하는 어떤 이가 말 끝에 덧붙이던.


``아이고  사모님,

우리 회장님 , 여자 있는 거 아니가?

돌다리도 두들겨봐야 한다.. 권세 가진 남자들 여자들이 가만 놔두나, 어디``


웬만큼 컸던 내가 듣기에도 거슬리는

그런 말 따위 개나 줘버려,,


엄마는 가족 밖에 몰랐고

아버지 말에 아무런  대꾸 없이 잘 따라주던

그 시대 어머니였다.

한평생 남편만 바라보던 엄마에게 혹시라도 상처를 준다거나,

정말 그럴리야  없겠지만

혹여라도.....

그런 일이 우리 집에 생긴다면

난 어쩌지?


예민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던 나는 엄마의 표정이 조금만 안 좋아도

혹시라도 아들을 바라는  할머니 때문에 엄마가 상처받은 건 아닌가

혼자만의 걱정으로 속앓이를 했었다.

개나 줘버릴 아들...


대를 못 이으면 그게 뭐...

어쩌라고~

이 시대에 대를 잇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삼촌들이 줄줄이 아들 낳아 주셨으니

이쁨 받는 사촌들이 대를 이으면 되시겠네.


옆에서 이죽거리는 사람들이  더 미웠다.

자기들 일이나 신경 쓸 일이지.

무슨 참견이람.

참 할 일도 없다 , 나 원 참



촉각이 곤두서 있던 사춘기 때

남 말하기 좋아하는 고모들과

이웃들의  쓸데없는 훈수두기는

얼마간의 방황을 더해주곤 했다.


``쓸데없는 소리마소.

아들 없음 B도 있고 C 도 있으니

제사 가져가면 될 일.. 딱 그만 하소.``


멋진 울 아버지.


나의 그런 불안을 알아차리기라도 하셨는지(그렇기야 했겠냐만,,, 그렇게 믿고 싶은 맘)

일침을 날려주는 모습.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런 작은 바람~이 있은 후 나는 잊어버리고 살았다.

아버지의 소원이 등 밀어주는 아들이었다니...


여자들은 딸이 자라면 팔짱 끼고 쇼핑 다니는 친구 같은 딸을 그려보게 된다고 한다.

하나 아니면 둘만 낳는 풍토 속에  나도 이쁜 딸을 얻게 되자

주변에서 많이 부러워했었다.



남자들은 자신을 닮은 아들이  군복을 입고  전역 신고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하나의 큰 즐거움이라고 들었다.

아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여자는 모르는 남자만 느끼는 아들을 대하는 태도.


세신사의 손이 아닌 아들의 손으로 등을 밀어주길 원했던 아버지는,

엄마의 불안과 주변의 수군거림을 일시에 없애 준 아버지는,

그런 소소한 즐거움이 부러우셨던가 보았다.


첫 외손주를 안으셨던 날


어쩌면  이 녀석이 자라 내 등을  밀어줄 날이 언젠가는 오리란 생각을 하진 않으셨을까.

첫 손주는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게 당연하지만

철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사뭇 달랐다.

사회생활로 바빠 잘 안아주시지도 않았던 딸들에게 보다

더 애정을 듬뿍 주셨던

아버지는,

작은 고사리 손을 잡으며 신나 보였다.


그 첫 손주가 5살쯤 되었을 때

아버지는 손주 손을 잡고 목욕탕을 다녀오셨다.

유난히 할아버지를 잘 따르던 손주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따라나섰다.


``철수야, 목욕탕 바닥 미끄러우니 뛰어다니지 말고

할아버지 등 잘 밀어드리고 와.``


``응 , 엄마. 나 바나나 우유~~``

``그래. 할아버지가 사 주실 거야.. 우리 철수, 할아버지 등 잘 밀어드리면 두 개 사주실 거야..``


작은 고사리 손으로 넓은 할아버지 등에 비누질해서  쓱쓱~


겉으로 표현은 않으셨지만

아들과 같이 목욕탕 가서  서로 등 밀어주는 그림을 아버지는 그려보셨을 거다.

밀어줄 아들 대신에  작은 손으로 옹골차게 밀어드렸을 철수.

아버지는 그 넓은 등을 오롯이 내맡기며  행복해하셨으리라.


손주 손을 잡고 걸어오는 아버지의 얼굴엔 언제나처럼 사람 좋은 미소가 가득했다.

철수가 힘도 세서 등을 잘 밀더라,

이 녀석이 할아버지를 닮아 참 잘생겼다고 얼마나 다들 칭찬하는지.ㅎㅎㅎ


아버지는 매일 가는 그 길을

바나나 우유로 즐거운 손주와 함께  걸어오셨다.


 출처 pinterest


구의원 의장직을 내려오신 후 아버지의 생활에 큰 변화는 없어 보였다.

직함을 내려놓으셨으나 여전히 오전 중 몇 시간은 당원들과의 통화로 시작하셨고

집엔  지인분들이 문지방이 닳을 정도로 들락거렸다.


자신의 명예에 흠이 생겨 힘든 시간이셨을 법도 한데  당당히 세상에 맞서고

자신과의 시간을 좀 더 가지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모습을 뵐 수 있었다.


사람은 마음에  무언가 품어 몰입하고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그 당시 아버지의 마음에 어떤 것이 들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단지 불행해 보이는 모습의 아버지는 보지 못했다.

애써 감추셨는지, 아니면 손주들 커가는 모습이 가슴속에 있으셔서 그랬는지 알 길은 없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진리는 

어떠한 계기가 있지 않고는 그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내적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픔은 무뎌지고

가슴속 분노는 옅어져 가니

다른 용기를 내신 건 아닌가 추측만 해본다.

그것이 무엇이었건 아버지는 당당하셨다.


아이 키우는 데 바빠 마음 살펴드리지 못한 딸이지만

든든한 모습 그대로 옆에 계셔 주셔

다행스럽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손주들과의 시간이 참 즐거움이셨던 아버지께

자주 모여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언니와 나는 자주 모였다.


이 땅의 청년으로 청춘을 보내셨던 아버지는 황혼을 향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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