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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써니
Jan 20. 2024
왜 사냐고 묻거든
딸이 얘기하던 게 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난 재밌는 일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왜 열심히 살아야 해?
``엄마, 뭐 해?``
매일 전화하지도 않던 딸이 운동 중인 내게 연락을 해왔다.
``운동하지~``
베트남은 한국보다 2시간이 늦으니 나의 운동 시간은 항상 한국에 있는 딸아이에겐 점심시간이다.
점심 먹고 커피 한 잔 할 때 가끔 전화를 하곤 하는데
한창 운동 중인 내겐 , 미안하지만 나를 붙드는 통화가 반갑지만은 않다.
`운동 시작 전에 얼마나 갈등하다 내 몸을 움직이는지.. 너 알아?`
`너도 늙어 봐. 몸이 천근만근이라는 말이 절실히 와닿을걸.`
이라는 말은 차마 못 한다.
``엄마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싶기도 하고 운동을 방해하는 딸에게 살짝 짜증이 난다.
``뭔 소리야. 나 열심히 안 살아. 열심히 살았으면 이렇게 안 살지.``
``매일 운동하고 엄마 루틴대로 잘 지키고 살잖아.``
딸은 뭘 묻고 싶은 걸까.
``그건 안 아프려고 그런 거지. 지금 내 상황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 와.
내가 아프면 네들이 힘들어.``
뭐 이런 당연한 일을 말하나 싶어 건성으로 답한다.
``그래도...... 하여튼 난 오래 살고 싶지도 않고 재밌는 일도 없는데 왜 살아야 해?``
코로나 우울증으로 한창 고생했던 딸이라 말에 신중함이 더해진다.
평소의 나 같으면 뭔 쓸데없는 말이냐.
이 정도는 하고 살아야지.
젊은애가 그런 생각 가지고 뭔 재미로 살아..라고 했겠지만
마음이 아픈 아이라 조심 또 조심한다.
그때를 생각하면 멀리서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했던 상황에 코로나가 정말 원망스러웠었다.
© boxedwater, 출처 Unsplash
딸의 넋두리가 없었으면 잊고 지냈던 말이었다.
어릴 적 나도 입시 지옥을 거치며 미래에 대한 고민도 당연했고
나이 든 내 모습이 어떨지 상상해 본 적도 많았다.
` 왜 매일 책만 파고들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쳇바퀴 돌듯 살아야 하지?
이런다고 내 미래가 확실히 보장된 것도 아닌데`.. 의문도 없진 않았다.
정해진 것도 보장된 것도 없었지만 남들이 하는 건 나도 한다는 심정으로 입시를 치렀다.
낭만과 꿈이 있는 대학생활은 아니었다.
집 학교
집 학교만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어느새
학교는 등 떠밀며 졸업식을 해줬다.
그렇게 던져진 사회에서
나는 느낌이 다른 불안감으로 나를 재촉하기도 포기도 하면서 내 20대를 보냈다.
남들 다 하는 결혼이라는 규범 속으로 들어가 살아내기 바빠서
예전의 그런 의문들은 저 멀리 던져두고 살았다.
아이를 낳고
낮밤이 바뀐 아이 때문에 비몽사몽의 시간을 견디며
뒤집고 기어 다니다 걷고 뛰는 아이를 보는 재미로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걸 인지하지도 못했다.
이게 인생이지.
뭐 별 건가.
하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학교에서 주는 작은 우수상에도 `우리 아이 천잰가`
달리기는 정말 자신 없었다.
운동회날 3등 스탬프 받아 본 게 제일 나은 성적이었다.
그런 엄마가 아이가 함께 쿵쿵거리며 열심히 뛰었다.
어릴 적 받아본 3등 스탬프를 내 아이도 받으면
그 해 운동회는 성공이었다.
내가 먹던
한국 야쿠르트
를 아이도 마시고
스케치북이며 노트 몇 권 , 연필 몇 자루
를 소중히 들고 오는 아이를 보며
이게 사는 건가 했다.
dㅣ
© gabrielyuji, 출처 Unsplash
``**아. 밥 먹자.``
``......``
오늘도 밥 먹으라고 불러도 대답하는 녀석이 없다.
``국 다 식는다. 얼른 나와``
내 목소리에 짜증이 배어들기 시작한다.
그때쯤 되면 한 녀석씩 어슬렁거리며 나온다.
의자를 끄는 소리가 거슬려 한마디 하면 ``알았어. 조심할게요.``
녀석들도 매번 듣는 소리가 듣기 싫은 듯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두 마디 못하게 쐐기를 박는다.
학교 다녀오면 방으로 들어가선 밥 먹을 때까지 얼굴 보기가 힘든 녀석들이었다.
집에 오면 재잘대던, 귀찮지만 듣기 좋았던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상냥함과는 거리가 먼 아이들은 내 모습과 닮아있다.
`엄마도 이런 생각이었겠지? 뭐 그땐 다 그렇지 뭐.`라며 자조적인 웃음만 짓고 만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문을 닫아걸 때쯤엔 대화가 아닌 잔소리가 일상이 돼버렸고
밥 먹을 때 외에는 아이들 얼굴 보는 것도 귀하게 돼버렸다.
아이는
학교에서
나는 이웃 아줌마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질 때쯤
여드름쟁이 아이들은 또 다른 사회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들 다 하는 입시라 쉽게..
`내 아이는 잘하고 있어
남들보다 못하지는 않는데..
조금만 더 노력하면 점프 업도 될 텐데..`
생각했다.
의심하다가도 이 녀석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믿고 또 믿고..
그러다가 아이도 나도 실패를 맛보았다.
추합 발표까지 다 끝나도
계
속해서 학교 홈페이지 합격발표를 돌려보고
전화기도 수십 번 켜보았다.
이거 고장 난 거 아니겠지!
하지만
내 혼미한 정신 외에는 고장 난 게 아무것도
없었다
.
한동안 현실부조화를 겪어내다 이부자리를 개듯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이와 함께 재수의 길로 나섰다.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일어나 재 도전의 기회를 갖게 되고
삶이란 또 이런 거구나,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는 것.
© igorrodrigues, 출처 Unsplash
그렇게 또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아이에게 삶이란,
용돈에 월세에 교통비에 공과금,
돈이란 게 없으면 정말 불편한 삶의 일부가 되는구나 싶었다.
이 모든 걸 함축하는
살아내기.
어차피 죽을 것이므로 살아간다고 한 하이데거의 말은 본질적인 답은 아닌 듯하다.
오늘도 운동하고 티브이 보고 밥을 먹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상을 살아간다.
© saadchdhry, 출처 Unsplash
멍하니 밖을 보다 지나치는 사람들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어딘가로 향하는 발걸음엔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저 사람들은 왜 살아가는 걸까.
서울의 거리엔 여기보다 많은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겠지.
그들을 보며 딸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나도 저들처럼? 아니면 쓸데없이 길거리는 왜 쏘다녀?`
잠깐 동안이나마 예전에 품었던 소중한 생각이란 걸 해본다.
나는 딸에게 무슨 말로
딸 표현대로 , 아등바등 살아간다고 얘기해줘야 할까!
딸과의 짧은 통화가 남겨 준 강한 파동이 하루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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