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Jan 27. 2024

디지털 펌과 보톡스의 상관관계



``고객님 샴푸는 언제 하셨어요?``

``어젯밤에요.``

``그럼 먼저 샴푸부터 하실게요~``

가운을 입혀주며 가방과 부스스한 머리를 누르고 있던 모자를 받아 캐비닛에 넣고 열쇠를 건네준다.


샴푸는 이쪽입니다. 손님.

어색한 발음이지만 똑똑한 한국어로 안내한다.

길게 늘어선 샴푸대에 편하게 누우면

열 손가락 끝으로 야무지게 샴푸를 해준다.

정수리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꾹꾹 눌러주는 손마디에 힘이 들어간다.

뒷머리 두피라인을 따라 꼼꼼하게 훑어가며 누르면 10년 묵은 두통도 다 날아간다.

머리 감겨줄 때처럼 기분 좋은 시간이 있을까.

잦은 편두통으로 시달리는 나는 기분 좋은 마사지가 조금 더 길어지기를 속으로 바라본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직원은 계속해서 어색하지만 친절한 한국말로 안내한다

앉은키에 맞게 의자 높이를 조절하며 쑥~ 내려가기도, 몇 번을 발을 굴려 올라가기도 하는 동작이  재밌는 놀이기구 타는 것 같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미용실 특유의 코를 찌르는 냄새에 일순 정신이 아득해진다.

자주 맡지 않으면 역해질 법도 하지만 평생을 이 냄새에 익숙해진 난, 역시  독한 여자다.


흐른 시간만큼 길게 자란 내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 단정하게(?) 뽀글거리는 파마를 하러 왔다.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검은색으로 염색하기 시작한 게 15년이 다 돼가는데 친정엄마로부터 받은 유전이다.

이른 나이부터 흰머리가 난 엄마 덕분에 나 또한 30대에 염색약과 친해진 게 15년이다.

나의 나이 듦을 가리기 위해 시작한 염색이  머리카락 노화를 앞당겨  내 머리카락은 말 그대로 극손상모다.

펌을 해도  자연스러운 컬이 나오지 않고  에센스나 젤을 바르지 않으면 아주 부스스한 상태다.

이런 아이러니라니.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해 검은색으로 염색을 하건만 내겐 젊은이들의 반질반질  윤이 나는 탐스런  머리카락은  기대하기 어렵다.

어릴 때 엄마들이 왜 극강의 뽀글거리는 파마를 해야만 했었는지 이해가 가는 상태가 돼버렸다.


``짧게 잘라주시고요. 어차피 풀고 다니지 않을 거라 최대한 짧게 자르고 디지털 펌 할게요.``

샴푸 한 머리를 매만지며 빗질하다 주저하듯 한마디 내뱉는다.

``고객님 , 머리가 아주 많이 상해서,

트리트먼트는 일주일에 몇 번 하시나요?``

물어볼 만하지.``거의 린스처럼 해요.``

``그런데 머리가 이렇다고요? 트리트먼트는 뽀득하게 헹구시면 안 돼요.``

내가 들은 말들과 달리 말하는 원장님은 첨이다.

``그래요? 전 항상 뽀득하게 많이 헹구는데``

이제 헝클어진 내 머리 원인을 알았다는 듯 신이 나서 설명을 해주신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내 머리는 돈을 아주 많이 들여야 그나마 볼만해질 만큼 질이 나빠졌다.


1년 만에 미용실 의자에 앉았다.

처분을 기다리는 동안 거울을 마주하고 정면으로 내 얼굴을 보게 되는데

미용실에서 제일 싫은 순간이다.


`거울은 장소에 따라 다른 모습의 나를 보여주는 것 같아`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걸까?

온갖 화학약품을 덕지덕지 바르고  랩으로 감싼다.

펌 롤로 내 머리를 온통 돌돌 말았다.

머리카락이 내 얼굴에서 얼마나 많은 퍼센티지를 차지하는 지를 알게 해주는 순간이다.

환한 조명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내 민낯과 대면하는 시간이면

나는 눈을 돌리고 싶어 진다.

점도 더 커 보이고 주름은 어쩜 저리 많이 생겼을까,

눈 밑 기미는 어쩔거나..


단정하고 멋진 내 스타일을 위해서는 3시간 넘는 시간을 내 미운 민낯과 대면하고

그런 자신을 잘 봐주어야 가능하다.


어릴 때 엄마와 목욕탕을 함께 가곤 했는데 엄마는 요거트와 오이를 잔뜩 챙겨서 가곤 했다.

` 아픈 때밀이를 참고 나면 맛있는 요거트를 먹을 수 있다.`라는 달콤한 기대감은 아픔을 넘어선 기분 좋은 설렘이었다.

한참을 초록 때밀이 수건으로 내 몸의 묵은 때를 벗겨내 주고 엄마는 당신의 몸을 정성껏 씻으셨다.

온통 벌게진 내 등을 바라보며 엄마가 건네준 요거트는 세상 어떤 요거트보다 맛있었다.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는다.

이내 시작되는 목욕탕 놀이.

엄마의 목욕이 끝날 때까지 찬물로 더운물로,  사우나 안에도 들어갔다 찬물에 다시 풍덩~

물을 튀겨가며 수영도 못하는 나는 한참을 그렇게 놀았다. 수영 잘하는 아이처럼~


엄마는 요거트를 왜 먹지 않고 얼굴에 바르나!

가져온 오이도 먹을 게 아니었군,

근데 엄마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아줌마들도 요거트를 얼굴에, 오이를 갈아 얼굴에 잔뜩 올려대고 있다.

엄마는 요구르트를 싫어하나~~

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엄마들은 목욕탕에 올 땐 실컷 마사지를 하고 샤워기 호수로 시원하게 흘려버리곤 하셨다.

뒤에서야 그런 행위가 수질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엄마들은 뽀얗고 발갛게 달아오른 이쁜 얼굴 위로   향긋한  요거트로,상큼한 오이로

사치스러운 마사지를 했었다.


집에서도 가끔 계란 흰자만 힘껏 저어 만든 땡글땡글한  거품으로  반질반질하게 마사지를 하시곤 했다.

거품이 마르면 엄마 얼굴은 팽팽하게 조여지고, 주름질까 표정을 없애버려 낯설었던 얼굴이 생각난다.


요거트랑 오이를 보면 아직도 목욕탕에서  행해지던 엄마들의 노오~~~ 력이 생각난다.


하루에도 열두 번 이상을 거울을 보게 되는데

여자인 엄마도 나도 그 거울에 비친 자신의 변해가는 모습에  익숙해지는 연습이 필요했다.

어린아이였다가 인생의 전성기인 20대를 지나  30대와 40대를 거쳐가면서 차츰 거울 속 자신이 미워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사진 찍기가 두려워지는 시기가 그때쯤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이 내 젊은 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며 멋을 부리는 날이 오면

나이를 감추기 시작한 우리들은 젊은 날의 자신을 찾아보려 애쓰기 시작한다.

그럴 때 우리는 요거트를 ,

오이를 얼굴에 붙이고

힘껏 휘핑된 게란을 얼굴에 문지르며 젊었던 자신을  거울 속에서 찾는다.


거울 앞에 앉아 3시간 동안 내가 찾은 젊었던 내 모습은 눈 붙어 있는 자리, 코 붙은 자리, 입 붙어 있던 자리...... 그 변치 않는 자리뿐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이미 그 청춘을 잃어버린 지 꽤 되어버렸고

애써 그 시절 ,요거트와 오이였던 보톡스를 떠올리지 않으면

내 젊은 얼굴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미용실 직원이 롤 하나를 풀어 컬이 잘 나왔는지 확인하고

원장의 지시가 떨어지면

거품 가득한 중화제를 머리에 골고루 뿌려준다.

예전엔 줄줄 흘러내리던 중화제가 이젠 흘림 방지대의 도움 없이도 쫀쫀하게 머리카락에 붙어있다.

15분여 뒤,

롯트를 다 풀고  샴푸를 한다.


2시간 동안 내 머리를 조이고 있던 롯트를 제거한 머리를 직원은 또 정성껏 샴푸 하며 마사지해 준다.

무거웠던 내 머리가 가벼워지며 두통이 말끔히 사라지는 느낌.

`두피관리를 잘하면 이마 주름도 좋아진다던데.`라는 생각이 스쳐가며

 `조금 더 세게, 좀만 더  해줘`를

외쳐댄다.


이제 마무리의 시간.

헤어 디자이너의 손으로 나는 다시 태어난다.

내 얼굴의 팔 할을 차지하는 헤어에  뜨겁게 혹은 차갑게 드라이어기를 돌려가며  손으로 스타일링을 한다.

오른쪽으로 돌렸다 왼쪽으로 돌렸다 머리카락을 맘대로 주무르는데 똑같이 하는 듯해도 집에선 나올 수 없는 기술이다.

시끄러운 소음이 그치고 나면 거울 속 나는 10년은 어려 보인다! ㅎㅎㅎ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3시간 동안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한결 산뜻해진 기분.


보톡스 그까짓 거 안 맞으면 어때.

이제 다시 젊어졌구먼. 머리스타일로 다시 살아났네, 뭐.


나이 듦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눈가나 이마에 잡혀가는 주름을 받아들이고 날이 갈수록 아파오는 관절통을 참아가며

즐겁게 나의 늙어감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질 수는 없을까!

오늘이 가장 젊은 날임을 인식하며 오늘 , 이 순간 행복하기로 작정하면

주변에 신경 쓰이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느끼는 만큼만 나이 든다.


나이를 먹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늙어서는 안 됩니다.

나이 든다는 건 나이 든 나를 보는 타인의 시선이 두려운 게 아니라

나이 든 내가 나를 보는 게 두려워지는 것 같다.

느끼는 만큼 나이 든다는 말처럼 내가 나를 노인으로 취급하면 나는 노인이 될 것이고

내 마음이 나를 청춘으로 인정하면 나는 여전한 청춘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모습을 사랑해 주자

내 모습을 인정해 주자.

내 얼굴의 주름은 어쩔 수 없지만 늙지 않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여전히 청춘인 내 마음은 내 얼굴의 영원한 보톡스이다.












작가의 이전글 왜 사냐고 묻거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