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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써니
Feb 02. 2024
낯선 길에서 만난 눈물
8월의 어느 날
서울의 어느 밤거리
나는 무작정 걸었다.
회사원들이 시름을 달래며 기울이는 한 잔의 맥주,
두런두런 이어지는 대화에 밤은 깊어갔다.
화려한 도시의 밝은 조명아래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낯선 도시의 밤거리를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걸어갔던 나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확성기 소리를 따라 ,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잔걸음을 재촉했다.
기어이 떨어지는 빗방울.
여름의 거리에서 비는 자주 맞이하는 손님이라
손에 작은 우산을 들지 않았더라면
되돌아 숙소로 돌아왔을 테지만
무작정 걷고 싶었던 그날 밤
나는 우산을 펴고서도 한참을 걸어
나를 부르던 소리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어딜까.
데이터 용량이 적은 알뜰폰을 사용 중이라
부러 데이터는 켜지 않았다.
어딜 가도 내 나라 내 땅에서 길 잃어버릴 염려는 없을 테니..
신호등을 기다렸다 길을 건넜다.
조금은 어두워지고 문을 닫은 가게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든다.
불교 용품을 판매하는 조계사 근처였다.
알고 가는 길은 우리를 편하게 목적지로 안내해 주지만
무작정
걸었던
길
끝에서
만난
반가운 이정표는 나를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설레게 했다.
조계사.
아이 입시 때 서울역 근처에서 잠시 지냈던 나는 조계사에 입시 기도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낮에 봤던 조계사는 은은한 조명 아래 서있는 밤의 조계사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부산에 사는 내가, 베트남에 거주하는 내가
이 밤에 조계사에 올일이 뭐가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그 밤에 조계사가 멀리 보이는 길을 걷고 있었다.
불교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나를 의지하고 싶어 질 때면 찾게 되는 그 어떤 신비로운 힘 때문에
나도 불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있다.
일평생 살면서 힘들지 않게 온실 속 화초처럼만 살아온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또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끔은 지쳐 곧잘 넘어지곤 한다.
그때마다 종교라는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
깊이 머리를 숙이고
경건한 마음으로 거룩한 존재를 경배하며
나를 봐주시길 바라왔다.
5년 전 들렀던 그곳에 섰다.
늦은 저녁이지만 법당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띄엄띄엄 앉아 자신의 기도에 열심이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방석을 깔고 앉은 이들은 염주를 돌리거나
불경을 펼쳐두고 염송을 하고 있었다.
옆 사람에게 방해 안되게 멀찌감치 떨어져 방석을 놓았다.
적극적인 종교활동을 하지 않아서인지 내게 불교는,
그저 강요하지 않는 자신의 방법으로
스스로 깨우침을 얻어가는 과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 자율적인 믿음이 편해서
나는 절을 찾고
법문을 듣곤 했다.
무심히 나선 길이어서 지갑도 챙기지 않았던 내 불찰로
현금이라곤 주머니에 든 1000원이 전부였던 난
불전함에 1000원만 넣었다.
누가 볼세라 돈을 쥔 손을 감추는 건 잊지 않았다.
많고 적음이 문제될 게 뭐있나 싶지만
그럼에도 1000원은 내 믿음의 무게감으로 다가온 탓이었다.
얇은 방석 하나를 가져와 무릎을 꿇고 조용히 삼배를 올렸다.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려 두서없는 기도를 시작했다.
`일체중생이 행복하게 해 주시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
다른 이들과 갈등이 있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건강하도록
부처님의 자비로우심으로 굽어 살피소서.`
큰 발원을 해야 한다고 누가 일러주었다. 그래야 기도가 통한다는 말과 함께.
그래서
내
기도는
항상
큰
발원으로 시작한다.
중언부언
기도에 집중하고 있었던 듯하다.
굽어 살펴주시고, 알아차리게 하시고. 블라블라..
그러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왜 이 타이밍에 이런 감정이 올라오는지 설명이 안되었다.
멈출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에 당혹스러웠다.
왜인지, 이유를 물으면 수백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특별한 슬픔이나 괴로움이 있었던 건 아니었기에
내 감정을 바라보는 자신을 감당해 내기가 버거웠다.
조계사 법당 내에는 커다란 불상이 있다.
법당 내 불상 중에는 가장 크지 않나 싶을 만큼 압도적인 크기의 불상이었다.
인자한 미소의 불상아래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한없이 나를 낮추는 의미로 108배를 했었다.
머릿속을 비우고 단지 절하는 동작에만 집중을 했고
더운 여름이었지만
더운 줄 몰랐고
그저 입시로 복잡했던 내 마음이 잠시나마 편해지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의 일이 생각났었던 걸까?
엎드려
오로지 절동작에 집중하다
왈칵 쏟아진 감정 앞에서
나는 5년 전의 나를 만났고
작년의 나를 만났다.
외면한다고 잊히는 일은 없다.
내 맘속에 지우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내 주위에 항상 도사리고 있다
나의 약한 고리를 뚫고 어느새 나를 집어삼키고 있는 그 고약한 것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면 내 감정은 물꼬를 터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오롯이 견뎌내야
그 순간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갱년기를 지나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호르몬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면
내 약한 고리가 조금은 이해가 되고
뭐, 어때 그럴 수 있지
라며 쉽게 넘길 수 있는 조그만 해프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능한 존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물로 자신을 봐달라고 울었던 기억이 한두 번 정도는 있을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돌보지 못하고 팽개쳐둔
내 안의 나를
어느 밤
낯선 길을 걷다 우연히 들어간
장소에서
우리는 왈칵 치솟는 울음을 통해서,
기도하는 와중에 터져버린 울음을 통해서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위로를 받게도 된다.
그렇게 한참을 엎드려 가슴 뜨거운 시간을 버텼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오롯이 나와 대면했던 시간이었다.
슬픈 감정은 아니었다.
그저 위로받고
뜨거운 손길이 느껴지는 신비로운 감정으로
그렇게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
호흡이 진정되고
눈물도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이제는 일어나야 했다.
좀 전과 달리 가벼워진 마음과 가벼워진 몸으로
한 번 더 삼배를 올리고 법당을 나왔다.
저녁의 조계사는 조명을 받아 밝은 법당의 단청 무늬를,
절탑을 비춰주고 있었다.
들어올 때 보았던 것보다 한결 아름답게 느낀 건 내 기분 탓이겠지.
탑 근처에는 초롤 올리거나 향을 피워 꽂으며 기도하는 이들로 적잖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으로 걸어가
향을 피워 꽂았다.
은은한 향 냄새를 맡으며 흔들리는 초를 , 제 몸을 태우는 향을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다 절 밖으로 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더 이상 낯선 길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선 신호등도
길가에 늘어선 가게들도
익숙한 동네처럼
내 눈에 들어오고
우리 동네 같은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처음 길을 나섰을 때와 다르게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에 힘이 느껴졌다.
사람은 왜 이다지도 가벼운 건지.
왈칵 쏟아낸 눈물의 무게만큼 난 가벼워지고
목적지가 정확한 나는
두려울 것도
주저할 것도 없는
직진만이 실재
했다
.
한번 지나온 길은 낯선 길이 아니다.
거기에 뜨거운 위로가 함께 있다면 그 길은
잊을 수 없는 치유의 길이 된다.
여름 한 밤
작은 산책이 준 커다란 치유의 시간이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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