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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Feb 19. 2024

기도

진정한 나 자신으로 다가서기

가족을 위해

나를 위해

매일 2시가 되면 기도를 한다.

향을 피우고  염주를 꺼내고

한 번 두 번 세 번

삼배를 하며

망상 없이 진실된 기도를 염원한다.


온 중생들을 위해

가족과 나 자신의 행복과 건강을 바라며

머릿속의 망상을 덜어내 본다.

짧은 시간이지만

정갈한 마음으로 임하는 시간은

내게 또 다른

삶의 의미를 가져다주는 시간이다.


약속이 있어 2시 기도 타임을  지키지 못하는 날엔 ,

외출 준비 후 기도를 하고 나서는데

평소의 기도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다.

편한 옷을 입고  기도할 땐

내 무릎은 부드럽게 굽혀지고

내 머리도 유연하게 땅에 닿는다.

하지만 한 껏 치장을 한 내 다리와 얼굴은

주름질 것을 염려한 뻣뻣해진 무릎과

땅바닥에 엉거주춤 얼굴을 숙인 불편한 자세로  삼배를 하고 있다.

나의 염원을 담은 기도 자세와 무척이나 다른 모습이다.


절에 갈 때  신도들은 펑퍼짐한 절바지를 입는다.

흔한 몸빼 바지처럼 생긴 절바지는 통이 넓어 앉았다 일어남을 반복해야 하는 절동작에 최적화된 옷이다.

상의도 엉덩이를 2/3 이상 덮어줘야 움직임이 큰 절동작 시 불편하지 않다.

같아 보이는 절복도 질에 따라 가격도 디자인도 천차만별이다.

한 번은 통이 넓은 치마를 입고 간 적이 있었다.

한결같이 편하고 화려하지 않은 옷을 주로 입지만 각자 세련미를 뽐내며 색다른  절복을 구입하곤 하는데 ,

늘 보던 회색 절바지와는 달리 세련돼 보이던 옷에 반해 구매한 옷이었다.



다른 이들과 달라 보이는 내 모습에 어깨가 올라가고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절에서도 나는 화려해질 수 있어~를 외치며 기분이 업된다.

기품 있는 옷차림으로 기도 올리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법당으로 올라가  방석을  가져다 놓고 법회준비를 하는 와중에 내 착각을 깨달았다.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치마의 기다란 단이 발에 밟혀

도저히 기도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자꾸 발에 밟히니 당황하여 앞으로 넘어질 뻔도 하고

치마단을 잡고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에 기도문구는 물 건너가버리고

오만가지 망상이 나를 사로잡았다.



보살님들이 이쁘다 해주니

좋은 줄 알았다.

어디서 샀냐고 하니

으스대고 싶었다.

이쁘고 좋은 옷

자랑하고 싶고 뽐내고 싶은 마음이 방해한 나의 기도 시간.

엉망으로 버려버린  그 시간 동안

나는  참회도 소통도 아닌

불손한  분별심으로 복잡한 심경만 얻었다.


우리가 때와 장소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이다.



바지 주름이 염려되어

잘 정돈된 머리카락이 헝클어질까 봐

내 모습은 이것도 걱정

저것도 걱정하며

온 마음을 다한 기도의 그것과 닿아 있지 않았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

제일 기본이 되는 신과의 소통 시간.

나를 내려놓고

온 마음을 다해 그분과 소통하며

나의 죄를 참회하고

모든 중생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들을 축복해 달라고 소원하는 자리에

나는 불편한 옷 하나 때문에,

양껏 나를 치장한 머리 때문에 ,

그 시간을 오염시키고 말았다.


내려놓음


류시화의 에세이 집에서 읽은 일화가 있다.

자신의 참모습을 찾기 위해

재벌 회장, 장관, 고위층 인사들이 히말라야를 찾았다고 했다.

그들은 자신을 찾기 위한 산행에서도 자신들이 가진 권력, 재물등을 의식하며

히말라야의 깨끗하지 못한 호텔에 불만을 드러내고

힘든 산행에 연신 불평을 쏟아내었다고 한다.


참된 나와 대면하며

진솔한 모습으로 다가간 그곳에서

그들은 작은 불편함을 이유로 그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 인듯하다.

학력, 지위, 재능 등을 앞세워 자신의 잘난 부분을 내세우며

남들에게 잘나 보이고 싶어 한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아닌 나를 둘러싼 허울로 그들을 포장하고 내세우며

타인과 소통하길 바란다.

자신이 가진 것들로 인해 그들은 우쭐대는 심리가 나오고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으스대기 일쑤다.

그런 방식으로 화려하고 잘 다려진 옷을 입고 상대를 바라본다면

상대와는 언제나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릴 뿐이다.


 사람과 진실되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불편한 주름 잡힌 옷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주는 편한 옷이 필요할 것 같다.

절 할 때 잘 숙여지는 바지, 구겨져도, 질펀하게 앉아도 불편하지 않는 마음의 옷을 입을 때 비로소 사람사이의 간극도 줄어들고 그 사람과 진솔한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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