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아버지 생년월일을 보면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일제 식민시대,
말로만 듣던 식민지 시기에
아버지는 일본에서 태어나셨다고 했다.
1939년이란 숫자가 주는 느낌은 정말 옛날 사람 같다는 느낌과
사진으로만 보던 시대를 가까이에서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티브이에서 흑백사진으로 보여주던 아득히 먼 모습으로.
며칠 뒤면 아버지 생신이다.
이제 85세가 되신다.
그 나이의 무게는 어떤 느낌일까!
여전히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아이들 안부를 물어보시고
자신은 잘 지낸다고 답해주시는 분
매일의 일상을 하루도 빠짐없이 지켜내며
젊은 손주들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계신다.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힘든 상황을 버티며 청년기를 보냈고
성공가도를 달리다 실패의 쓴맛도 보고 이제 노인이 된 나는 잘 먹고 잘살았다.
이렇게 두줄로 요약되는 인생이지만
절대 짧지 않은 역사를 아버지는 살아내셨다.
몇 해 전 친정에 들렀다 베트남으로 출국을 서두르던 중이었다.
차를 태워주려 먼저 나가시는 뒷모습을 우연히 서서 한참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가슴 한편이 내는 소리를 들었다.
쿵
거기엔 머리숱이 다 빠져 듬성듬성해진 머리에 굽은 허리 굽은 어깨의 노인이 걸어가고 있었다.
매년 봐오던 모습과 다른 노인의 모습.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나도 결혼할 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아버지를 60대의 아버지로 착각하고 지내온 것 같다.
항상 자신감 넘치는 목청으로 반겨주시던 분
커다란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던 분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우리 앞을 걸어가시던 분.
그랬던 아버지는
노인의 모습으로 내 눈앞에서 걸어가고 계셨다.
가끔 사람들은 현실을 외면하며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살아가는 것 같다.
나는 아버지의 늙음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게 된 뒷모습에서 내가 느낀 충격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날 이후 매년 아버지의 뒷모습은
더 아프게 다가왔다.
작년과 또 다른 모습
또 작년과 다른 모습.
그렇게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버지는 세월과 함께 하고 계셨다.
언제나 내 옆에서 세월을 비껴 살고 계신 줄 알았던 아버지.
많은 사연을 말하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
나를 업고 뛰던 그 당당하던 등은
집 안의 모든 문제를 나서서 해결해 주시던 그 등은
이제는 어깨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나도 편히 쉬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결혼하기 전 아버지와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 시대의 여느 아버지처럼 ,
아버지는 집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외부 활동이 많으셨고
중요한 인생 결정은 거의 엄마의 입을 통해 아버지께 전해졌다.
그렇게 어쩌면 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게 소외 아닌 소외를 느끼며 자신의 노년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둥지로 돌아왔을 때는 딸들은 모두 떠나 있었고
그 딸들과의 시간을 아쉬워하지만 되돌려 함께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 늦어버린 뒤였다.
아버지의 뒷모습엔
가족들과 함께 못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도 배어 있어
더 아프고 아렸다.
전화를 걸었다.
엄마랑 통화를 하다 아버지를 바꿔달라고 하면
한 톤 올라간 목소리로 화답하신다.
``어,, 그래.. 잘 지내지? 네들이 너무 잘해줘서
엄마랑 난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 딸들 너무 착하게 잘해줘서 고맙다.``
듣기 좋으라고 하시는 줄 알지만
통화할 때마다 낯 간지러운 멘트를 날려주신다.
예전엔 상상도 못 할 말이었는데.....
저런 모습 낯설다.
아버지도 노인의 모습을 닮아가는구나.
우리에게 자신의 힘듦을 말하고 싶고
나도 이제 늙었다는 걸 알리고 싶으셨는데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수화기를 통해 전해지는 진한 그리움과 애정을 느끼며
왜 이것조차 제대로 못 해 드렸는지 죄송한 맘이다.
당신의 수고로움으로 저희가 있고
저희 아이들이 잘 커갈 수 있었으며
행복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가오는 설엔 아버지의 고단한 등을 주물러 드려야겠다.
지치고 힘든 등을 안마해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