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Dec 25. 2023

오늘 저녁 무슨 대화를 나눴나요

남편과 나누는 스포츠 이야기

아이들이 나가고 난 빈자리에

남편과 나만 남게 된 지가 몇 년 째되었다.

토요일마다 남편은 골프를 치러 가는데

주변에서 자주 듣는 말이

도대체 둘만 있으면 뭘 하고 지내냐는 것.


무슨 말을 하느냐, 대화가 되냐..

궁금한 것 투성이인 중년 남자들이란...


아이들의  빈자리를 애완동물로 채우는 이웃들이 제법 있다.

아니면 같은 취미를 살려 베트남에선 골프 치는 게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 잡고 있는데

그 흔한 골프도 나는 치지 않는다.

나이 들어 득 보다 실이  많을 것 같아 과감히 포기한 종목이다.


남들이  볼 때

아이도 없고

흔한 강아지나 고양이 한 마리 없고

그야말로 대화리스 부부인데

어떻게  그렇게 지내는 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아이들이 한국으로 한 명씩 들어가면서

우리 부부에게도 갑자기 찾아온

빈 공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긴 했다.

아이 중심으로 살아온 게 20년을 넘어서면서

어쩌면 우리도 아이를 빼고는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아이 교육, 아이 친구관계, 아이 학교, 학원 문제 등

이런 사소한 일들이 대화의 시작과 끝이었던 지난 시간들이라

무슨 말을 해야 이 적막이 없어질까...


싶었던 순간도 잠시.


그날그날 우리에겐  밖에서 아줌마들 수다 떤 얘기

회사에서 있었던 황당한 얘기

오늘 먹은 점심 얘기 등.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식탁 위에 올라오곤 했다.

물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 특별할 것도,

재미있는 사건은 흔한 일은 아니었고

특히나 우리는 공동의 취미도 없는 부부이니..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메뉴 하나씩에 포인트를 줘 분위기를 바꿔본다.

저녁 식탁에 요즘 제철인 과메기를 한 접시 올렸다.


``소주 한 잔 줘``


해물 파전이나 순대를 배달시켜 올려두면

``야~~~ 오늘도 소주 한 잔 해야겠네. 당신이 먹고 싶어 시킨 거 아냐?``


``오늘 치맥이 당기네. 한 마리 시킬까요?``


알코올이 한 잔 들어가면 우리 대화는 좀 더 길어지고 부드러워진다.


유튜브로 좋아하는 유행가도 틀어두고

옛날이야기, 주변 이웃들 얘기로 식탁 위는 풍성해진다.


그리고 알게 된 스포츠의 세계.


나는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생존을 위해 걷기와 요가를 하고는 있지만

그 운동이 끝나고 나면

저녁 준비로 움직이는 게  동선의 전부이다.


그만큼 움직이는 거 땀나는 걸 싫어하는데

작년에 우연히 보게 된 ``최강야구``

은퇴한 야구선수들의 예능 재도전기인 최강야구는

처음 봤을 때 보다 점점 더 흥미를 끌게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예능 프로로 접근했다가 은퇴한 야구 선수들의 현역 시절 열정을 다시금 볼 수 있는

반전이 있는 프로여서 매주 즐겨 보고 있다.


새로 얻은  기회에 대한 그들의 자세는

감사함과 치열함.

좌절과 희망이 섞인 그들의 야구 2막 인생!

삶에 대한 우리의 자세와 닮아  있어 몰입하게 된 프로였다.



그리고

올봄의 롯데가 미친 척하며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어

식사 시간마다 우리의 안주거리가 되고 반찬이 되어주었다.


야구 규칙도 잘 모르고

선수 이름이랑 얼굴도 매치가 안되지만

관중석의 응원가에 한껏 들떠

함께 응원하고 가슴 졸이고


``롯데, 롯데~~``를 외쳐댔었다.

"롯데에 한동희~~ 롯데에 한동희~~``

야구는 경기 자체도 신나지만  관중석의 반응을 보며 즐기는 재미도 크다.

홈구장에서 롯데가 이기고 있을 때는 환호성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규칙을 모르는 내가 질문을 던지면 남편은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려 시동을 건다.


간단명료하게 말해줘도 될 것을 정성 들여 길~게 설명한다.

너무 길어져  집중도가 떨어지면 건성건성으로 듣는 나.

그래서 내가 묻는 질문은 매번 똑같다.

다음에 물어도 남편은 똑같이 답하고 길게 설명한다.

그러면 또 건성건성......


저녁 식사 시간을 함께 해 주던 야구 시즌이 끝났다.

가을 야구는 물 건너갔고

롯데가 #데가 되어  남편의 욕바가지를 양껏 들었지만

우리의 화젯거리가 되어준 그것으로 족하다.


이제는 축구차례다.

야구가 끝나니 또 축구의 계절이 왔다.


골대에 공이 들어가면 1점 획득.

이것이 내가 아는 축구의 전부이다.


이강인의 파리 상제르망 입단 소식이 전해 진 뒤

그 귀한 유니폼을 남편이 2주 넘게 오매불망 기다려 받는 것을 보며


``정말 자기가 저걸 샀다고? 웬일이래.. 그런 열정도 있으신가 봐요.

아니 근데 가격이 얼마라고요? 저 비싼 걸,,, 왜 사요?  참, 나.. 대단하십니다.``


남편은 거금을 주고 저런 걸 살 사람이 아니다.

무엇이 그를 클릭하게 만들었는지는

축구 리그가 시작되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축구도 모른다.

손흥민, 김민재, 황희찬, 이강인 등

우리 국가 대표들이 유럽에서 활약을 하고 있고

월드컵 A매치 할 때마다   몇 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와서  경기를 펼치면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을 외쳐대는  응원팀들의 함성에 동참할 정도로만 축구를 배웠다.


중요 경기가 열리는 날, 베트남 식당에선 대형 스크린을 준비해 두고

축구 경기를 함께 응원하는 이벤트도 준비한다.

붉은 악마 유니폼을 입고 우르르 몰려가는 한국 아저씨들로

골이 들어갈 때는  함성이 집 안 까지 들려오곤 했다.


유럽 리그가 시작되면서

남편은 경기가 열리는 날엔 새벽을 밝힌다.

한국보다 2시간이 늦어

경기를 직관하려면 새벽 3시까지 깨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다음 날 어느 정도 지장이 있을법한데도

연일 혼자 거실 티브이 앞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대기한다.


이강인 경기 날이면 유니폼을 입고 대기하는 모습이 저런 면도 있나 싶어 헛웃음이 나온다.


자려고 누웠다가 남편의 함성이 터질라치면

방을 나가 확인 사살을 해줘야 흥이 난다.

``골 넣었어? 와~~~~ 우리 흥민이 잘한다!!!! 역시 쏘니``

``이강인 발재간이 정말 장난 아니네...``

``아니,, 잘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거지.

쟤들은 한 번 못 한다고 저렇게 욕을 해대는 거야? 뭐가 그래...?``

이런 식의 대화는 요즘 거의 일상이다.


퇴근 후, 그날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다  모르는 축구 규칙을 물어본다.


역시나 남편은 신이 나서 설명을 한다... 너무도 길~~~ 게..

오늘도 듣다가 건성건성~~

길게 설명해 줘도 모르는 건 모르는 것


아마  다음 주에도 나는 똑같은 질문을 던질 거다.

그러면 남편은 또 신이 나서 얘기해 주겠지.ㅎㅎ


공통점이 없는 우리 부부에게도  스포츠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화제의  중심이 된다.

내가 잘 몰라도  우린 함께 즐길 수 있다.



결혼 전에도 아이가 없던  신혼 때도 우린 많은 말을 하며 잘 지냈다.

그때를 생각하면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지금 대화가 없다면 더 이상한 게 아닐까.


신혼 때 다들 뭐 하고 지내셨는지..

우린 그때도 지금도 잘 지낼 수 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서로의 관심사에 조금씩만 들어가 주면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대화리스가 아닌 투머치 토커로 둘 만의 시간을 보낼 수가 있다.


24일에 승리를 안겨준 손흥민 선수의  경기로 우리의 크리스마스도 한층 즐거웠다.



작가의 이전글 사람이 먼저인가 사연이 먼저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