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 Dec 20. 2023

사람이 먼저인가 사연이 먼저인가

내 잘못인가 네 잘못인가

사람 사이에 있는 거리

1미터도 안 되는 거리는 언젠가는 10센티만큼 가까워지기도 하고

100미터만큼 멀어지기도 한다.


정말 내가 좋아하고 믿는다고 여겼던 지인이었지만 그와의 거리는 어느 때는 가깝게

또 어느 때는 너무 멀어져 그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한다.

단지 멀리 떨어져 버렸다는 거리감이 문제가 아님은 당연한 일이다.



친정 식구들이 가까이에 살아서 친구가 없어도 힘들지 않았다.

밥 숟가락이 몇 개인지, 시댁 식구들이 뭘 하시는 분인지, 아이들이 무슨 브랜드의 옷을 사는지

어떤 반찬을 먹고 지내는지 등 속속들이 오픈을 하며 지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은 감추는 것도 있었다.

그런 철칙이 깨진 건

오랜 외국 생활을 하면서

1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지낸 지인들 때문이었다.

베트남 특성상 외국인들은 한 구역에 모여 살게 되는 게 일반적인데

푸미흥이라는 곳, 아파트 단지 안에서 모이는 사람이리는 점이

우리 사이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었다.


처음 외국에 나와서 슈퍼며 학교, 학원 등 모든 게 낯설고 정보가 없을 땐

이웃만큼 좋은 사람이 없다.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이 왜 있을까!


16년의 해외생활 동안 스쳐가는 많은 인연들이 있었다.

지금도 간간히 연락하며

얼굴 보면 너무도 반가운 얼굴들이 있는가 하면

바이바이 이후엔 문자 한 통 없는 경우도 태반이다.

뜨내기가 많은  외국에서 10년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낸 다는 건 작은 인연이 아닐 터였다.


그들과의 만남은 하루의  활력이 되어주고

전날 밤 부부싸움의 위로가 되어주고

뒷말하는 이들에 맞서  같은 편이 되어주며

일상을 공유하는 이들이었다.



올해 4월 경 이별을 한 지인이 있다.

아침에 오는 메이드에게 주스를 만들어  같이 마시고

구운 계란을 나눠주기도 하고

``**아, 호박죽 끓여놨다. 와서 가져가라.

커피도 마시게 건너와. 점심 죽 먹고 커피 마시자.``


``동치미 담갔는데 한 통 씩 가져가라. 잘 익었더라,``

한국에라도 다녀올 때면

``과일 나눠 먹으려고 조금 가져왔어, 사과랑 귤 조금씩 담아놨으니 가져가.``


``보름 나물했는데 같이 먹자. 들깨 가루 듬뿍 넣고 무쳐 났다.``


언니의 부름에  우리 셋은 쪼르르 달려가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수다타임을 즐겼다.

그런 시간들이 10년이 흘렀다.


``주변에 잘 베풀고 좋은 일 많이 하니 형부가  승진해서 그 연세에도 저리 잘 풀리잖아...

 언닌 복도 많아~~``

칭찬이  과해도 좋을 만큼  인심이 후한 언니였다.

형부가 다른 지역 법인장으로 발령이 나서  형부가 먼저 가고

언니는 3개월을  베트남에서 더 살았다.


이삿짐 정리도 돕고 홀로 남은 언니의 말벗이 되어주며 우리도 성의를 다했다.


그 이별 후

10여 년의 인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베푼 금액만큼은 되돌려 받고 싶어 하는 그분

내가 부탁한 일쯤은 너희들이 힘들어도 좀 해줘도 되지 않냐는 그분


``내가 널 언제 다시 본다고 조의금 내겠어?

너도 우리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 조의금 안 냈으니 나도 안내도 되지?``

``내 옷 산다고 남은 돈 얼마 안 되지?

내가 10만 원쯤 너희들 저녁 값으로 남겨주려고 했는데

모자  세 개 사고 나면 남는 게 없겠네.

고맙고 미안해``



얼마 전에 들은 얘기들이다.

그동안 언니가 보여준 친절과 고마움이 거짓인가 싶을 만큼 어이없는 말들이 이어진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억지로 이어지게 한다고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싫은 인연을 계속 이어가는 것도 아니라고들 한다.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서

긴 시간 동안 이어져온 인연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직접 해명을 들어보진 않았으니

그의 말을 들어볼 만도 하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믿고 따르며 좋아하던 사람에 대한 실망은

변명에 앞서 그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하물며

지금 현재 옆에 있지 않은 상태라면 더더욱.


우리가 함께 한 시간에 대한 마지막이 너무도 힘겹게 느껴졌다.

주장이 강해 맞춰주는 부분이 적잖다 여겼지만  크게 어려운 사람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셈은 밝다고 여겼지만 누구든 맘 속에 하나쯤은 품고 있는 욕심 같은 것이라 무심히 넘겼다.


믿고 따르던 사람이어서 인연을 끝내고자 하는 내 맘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법정 스님


지내 오면서 좋았던 기억만 있는 건 아니지만 나쁜 기억은 루머에 더해져 더 크게 부풀어진다.

단지  좀 더 이재에 밝고 계산에 철저해 손해 보고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


옆에 있을 땐 크게 걸리지 않던 일도 몸이 멀어지면 오해와 불신을 크게 만드는 것 같은 건 내 착각일까?


한번 틀어진 인연을 되돌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자세도 문제이지만

구태여 그 말을 들춰서

이해를 구하고 다시 인연을 이어간다는 것도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정 때문에 안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다 보면 소중한 인연이 나에게 다가오지 못한다.``


혹시라도 그 사람의 진의를 잘못 이해한 내 잘못이 큰지도 모른다.

오해에서 비롯된 절연이라면 일생을 두고 후회만이 남겠지만

그의  조그만 실수도 크게 다가올 것임을 알기에 더 이상의 미련은 두고 싶지 않았다.


떨어져 있으면서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면

그 또한 인연의 끈이 여기까지 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주는 인연이 아니어도 그는 잘 살아갈 사람이다.

언제나처럼 씩씩하게

우리가 가진 생각 따위는 꿈에도 모른 채

언제나 좋은 언니로 남아.



우리의 거리는 30센티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였는데

이제는 천리만리 멀어져

가까이 다가가기엔 너무 멀어져 버렸다.


몸도 마음도

멀어진 인연의 을 놓는 게 맞는 일일까?

한 해의 끝에 서서

인연의 끝을 말하는 내가 과연 옳은 일일까?








 




작가의 이전글 채우고 비우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