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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an 04. 2024

도마뱀과 공생하기

베트남에서 살아남기

처음 베트남에 도착해 임대로 들어간 아파트는 한인 밀집 구역에 있었다.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이미 낡아가는 모습이었고

방안의 가구에선 곰팡이 냄새가 아무리 닦아도 없어지지 않았다.

1년 내 덥고 습한 기후이다 보니

나무로 된 가구는 곰팡이가 잘 슬고

싱크대 안이나 화장실 배수구에선 하수구 냄새가 자주 올라오곤 했었다.


하지만 복병은 다른 데 있었으니

수많은 개미의 출현은 나를 질겁하게 만들었다.

옷장 안에도 침대 위에도

혹여 식탁 위에 먹다 남긴 음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개미떼의 공격에 혼비백산했었다.

에프 킬라를 아무리 뿌려대도 그때뿐이고

다른 길을  통해 다시금 개미가 출몰하곤 했다.

줄지어 가는 개미를 따라가 개미구멍을 막아보기도 하고

잡스며 개미가 피해 간다는  분필을 한국에서 사 와  길게 선도 그어보았다.

`그래봐야 소용없을 걸~~`라는 듯

어김없이 개미들이 줄지어 집안을 줄지어 다녔다.

제일 효과가 좋은 건 살충제를 흥건하게  뿌리는 거지만 그러고 나면 집 안 가득 향기로운 {?} 냄새를 나도 맡을 수밖에 없다.

무향을 뿌려대도 그 찝찝함을 무시할 수 없다.

미끌거리는 바닥을 치워내야 하는데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 몸에 묻을세라 날마다 전쟁이었다.

밤마다 ``끽끽끽~~``

낮엔 찍소리도 안 나고 형체조차 찾을 수 없는 도마뱀 소리다.

야행성이라 밤이 되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소리를 한 껏 올리며

불 꺼진 부엌, 냉장고 뒤나 에어컨 뒤에서 스물스물 기어 나온다.

작고 귀여운 새끼는 움직임도 느리고 귀엽기라도 하지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만큼 함께 지냈을 , 살이 올라 통통한 도마뱀은

물 마시러 부엌에 나온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하는데

그야말로 기겁을 한다.

`엄마야!!`가 절로 나온다.

저녁 준비를 위해 부엌에 불을 켜면 전기밥솥 뒤에서 후다닥 내빼는 마뱀이를 자주 만난다.

절대 부엌에 음식을 둘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동작도 어찌나 빠른지 겁을 먹은 내가 잡기엔 역부족이다.

실상은  그놈이 더 무서울 텐데.

덩치가 훨씬 더 큰 나는 매번 간발의 고성만 지르고 `냅다 튀기` 신공을 펼칠 뿐이다.


하얀 벽면에 기다랗게 줄을 그어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도마뱀 놈.

그렇게 뭘 주워 먹었는지 도마뱀은 우리가 잠든 밤 온 집안을 돌아다니다 벽에 똥칠(?)을 하고 간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산 곤충 바퀴벌레

이곳 바퀴벌레는 한국처럼 집 안에 기생하지는 않는다.

커다란 날갯짓으로 어디서 들어왔는지 모르게 집 안을 슬금슬금 기어 다니기도, 천장 위를 날기도 한다.


호찌민 한인 카페에서 웃픈 얘기가 가끔 올라온다.

자신은 베트남에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집에 바퀴벌레가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울고 앉아 있다. 어찌해야 하느냐.

`에프 킬라를 뿌려라.`

살충제가 다른 방에 있어 나가지도 못한다. 너무 무섭다.

기가 막힌다.

손으로 잡진 못해도 잡지책으로 스매싱 정도는 날릴 수 있는 나에 비하면

저 아줌마를 어찌하면 좋을까.

남편 올 때까지 그러고 울고 앉았다.

바퀴벌레는 한국보다 크기가 크며 동작은 굼뜨다.

잡으려 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을 만큼 느리다.

하지만 나도 가끔은 바퀴님이 무섭다.


마지막 가장 악질

화상벌레.

어느 해, 옷장 안에 있는 옷을 꺼내 입었는데 목덜미가 갑자기 따끔거렸다. 불에 덴 듯 쓰라린 느낌.

뭐 그럴 수 있는 일이라 가볍게 여기고 말았는데

쓰린 느낌이 오래 지속되며 수포가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아주 고통스러워진다.

길게 줄지어 난 수포의 원인은

대상 포진 이딴 거 아니고

나도 모르는 새 내 옷에 있었던 화상벌레 때문이었다.

화상벌레의 체액에는 페데린이라는 독성방어물질이 있어 피부에 접촉하거나 물릴 경우

`페데러스 피부염`이라 불리는 증상을 일으킨다.

그날의  기억은  그 후로도 몇 번 나에게 왔는데

그럴 때마다 특유의 쓰림이 기억을 되살려 준다.

2~3주 정도 통증이 지속되는데   통증이 사라지고 나면 아주 가렵다.

그리고 검게 얼룩진 흉터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으며

눈에 잘 띄는 부위에 수포가 올라오면 한 마디씩 거들게 되는 흉터다.

빛만 쫓아다닌다는 정보를 듣고 밤에는 커튼을 치고 최대한 빛을 차단했지만

어디서 들어왔는지 화상벌레의 공격은 서너 번 더 있었다.

화상벌레를 보면 절대 손으로 잡으면 안 되며 접촉 부위는 만지거나 긁지 말고 물이나 비누로 충분히 씻어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아이들은  한 번도 공격을 받지 않았다는 것.

자다가 화상벌레의 공격을 받아 얼굴을  문지른 지인의 경우엔 화상 입은 것처럼

한 달 정도를 고생했다고 한다.


에프 킬라 한 통을 다 써도 죽지 않고 기절 정도만 하는 도마뱀, 얼굴이며 몸  곳곳을 수포로 뒤덮는 화상벌레, 그 외 각종 날벌레와 뎅기 모기 등

베트남은 온갖 벌레들로 넘쳐나고 있다.


고온 다습한 이곳은 많은 벌레들의 습격을 당연시해야 한다.

현지인들은 도마뱀을 봐도 툭툭 털어내 버리고 모기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즐겨 먹는 향채가 모기가 기피하는 향을 내뿜어서 잘 물리지도 않는다고 한다.


우리에겐 낯설고 끔찍한 벌레이지만 그들에겐 일상이고  화상벌레를 제외하면

크게 해로운 것이 아니어서 괘념치 않는다.

도마뱀은 집 안의 해충을 잡아먹으니 나쁘게 여기지도 않고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기도 한다.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고 공기질이 점점 나빠지면서

오염지역에서는 잘 살 수 없다는 도마뱀들이 도시에서는 많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20여 년 전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에 비하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게 실감 난다.

밤마다 벽에 새까맣게 붙어 기어 다니던 마뱀님이 요즘은 거의 보이지 않고 집 안에서만 가끔 출현할 뿐이다.

지금도 무수한 벌레는 내가 베트남에서 지내기 힘든 요인이긴 하지만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푸미흥 지구가 개발되기 전

이곳이 원래 그것들의 삶의 터전이었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면


그것을 빌려 쓰는 것이 우리임에도

우리는 주인행세를 하며 온갖 화학제품으로 ,

무력으로 그것들을 몰아내는 데 혈안이 되어있어

누가 누구를 탓하려나 싶은 마음도 든다.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얼마 전 뉴스를 통해 빈대의 출현으로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다.

없어졌다고 여겼던  빈대

지하철, 기차, 침대 등 인간이 사는 어디서든 발견되고 있어 골칫거리로 대두되고 있다.

예전의 방역물품이 효과가 없다는 말과 함께.

화학적인 박멸을 통해 사라져 가다 다시금 강력한  생존력을 보여주는 것이 빈대뿐일까!


언제 어디서든 그것들은 살아남기 위해 진화할 것이다.

인간들이 그러한 것처럼.


여전히 벌레들이 집 안 곳곳에서 출몰하여 나를 힘들게 하고

도마뱀은 나를 놀라게 하지만

이젠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멀리 기어가는 도마뱀을 봐도 무감각해지고

빠른 동작으로 냉장고 뒤로 들어가면

빠른 체념과 함께 우리의 공생을 인정한다.


그 대신 음식물은 절대 식탁 위나 싱크대 위에 남겨두지 않는 소심한 복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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