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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써니
Mar 13. 2024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팔다리에 피가 다 쓸려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은 하얗게 지워지고
눈앞이 아득해지는 순간.
나쁜 일은 연거푸 온다고 했던가.
크게 힘들게 지낸 적이 없었던 나날이었다.
어린 시절이나 결혼하고 지금껏
큰 난관 없이 살아왔다.
한두 가지쯤 고민 없는 사람 없다는 마음으로 ,
힘든 일이 생겨도 애써
마음 한 번 고쳐 먹으면 다 지나간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내 슬픔은 내 선에서 해결하기로
우리는 괜찮은 척 서로의 아픔을 외면했고
이런 종류의 슬픔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몰라서
우리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일도 시간이 약이라
시간이 흐른 뒤 생각하면
`뭐, 그럴 수도 있지. 인생이 별건가 다 그런 거지..'
라며 자조적인 웃음을 띠며 흘려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글로 이 사실을 접하는 순간만큼은
더 이상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픔으로 남는다.
혹시나 했던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믿었고
충분한 고민의 시간이 있어야 해결되는 일이라 여겨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제약 때문에라도
의도적인 무시로 지내왔다.
마음 한편엔 믿음을
또 다른 악마적 목소리엔 의심을
매일매일 천사와 악마의 두 목소리를 들어가며 나는 버티고 버텼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남편에게도 , 나에게도
버티기 힘든 시간이 온 것이었다.
일 순간 정적이 흐르며 어떤 방법도 소용없다는 자각에 절망했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아이나 애완동물은 없었지만
나름 잘 지내고 있다고 여기며 살아왔는데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만 내뱉으면 봇물 터지듯
고통의 언어들로 우리를 옭아맬 듯해서..
지금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저 침묵으로 고민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소심한 성격 탓에 말로 해결이 안 되는 일엔 울음부터 나오기 일쑤였다.
언니나 동생과 다툴 때에도 눈물부터 나오는 나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눈물 흘릴 이유 만가지도 넘지만,
눈물이 어떤 것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참아야 했다.
밥을 먹다 평소 목디스크로 고생하는 남편이 팔 저림을 호소했다.
왠지 요즘 들어 평소보다 더 짠한 마음이 드는 남편에게 흔쾌히 마사지를 해주었다.
많이 늙은 뒷모습, 아픈 몸을 이겨내며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오늘도 비싼 의료비를 아끼려
나의 손길에 의지해 밥을 먹고 있다.
건드리면 터져버릴 나날,
남편 뒤에서 소매자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실컷 울었다.
소리 죽여.
내가 울면 남편도 못 견딜 것 같아.. 한 번도 그의 앞에서 울지 않았다.
나라도,
나마저
약한 모습으로 매일매일 갱년기 핑계 삼아 울어댄다면
남편은 기댈 데가 없을
것 같았다.
가부장적이라는 딸의 핀잔에도 난 내 남편을 신뢰한다.
미운 적이 없었다면 거짓이겠지만
그가 지금까지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해 더운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같이
봐왔
기에
난 그의 축 처진 어깨를 마사지해 주면서 같이 아파했다.
이럴 때일수록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나 수다 떨라고?
이럴 때일수록 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마음 다스리라고?
누구나가 쉽게 그렇게 말한다.
아니..
이건 그렇게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훨씬 편한 이웃이 되어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해 줄지도 모른다.
외출하는 것도 사실은 버겁다.
내 마음은 지옥인데 억지웃음으로 나를 숨기고 몇 시간 공허한 만남을 한 뒤엔?
그러면 나는 나아질 수 있나?
아니다.
그럴 수가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시간이 많다.
그래, 걷자.
한 시간 러닝머신 위에 오른다.
땀이 나고 정신이 맑아지면 다운되었던 내 마음이 심장 박동과 함께 올라온다.
밥을 먹고 앉아 커피 한 잔을 앞에 두면 다소 마음이 진정된 나와 마주한다.
울컥울컥 감정이 휘몰아치면 큰소리로 책을 읽어본다.
책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어느 정도 감정을 다스리는 데는 효과가 있다.
그 소식을 접한 뒤 가장 힘든 시간은 새벽녘.
갱년기 증상으로 새벽에 한두 번은 일어나게 되는데,
다시 잠드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전화기를 들었다가
눈이 시려
껐다가.
다시 전화기를 들어본다.
그렇게 하루 3시간 정도로,
버틸 만큼만 잠을 잔게 일주일째다.
슬퍼질 때면 나를 다그쳐본다.
나까지 무너지면
다른 사람들이 더 힘들어.
견뎌! 버텨!
지금 힘든 건 내가 아냐.
땅을 딛고 일어서려고 애쓰는 사람을 생각해.
이 일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두렵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세월이 지나 정말 내게도
뭐, 인생이 다 그렇지. 별거 없어, 사는 거.
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긴 어둠을 버텨야 한다.
아침이 오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
어둠 뒤에 밝음도 오고 그 밝음은 더 환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날을 위해 오늘은,
울음보다 더 깊은 웃음으로 오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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