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시작된 지도 삼일이 지났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일이 없는 일상이라 시간이 더 빨리 간다고 하더니
너무도 실감되는 날들이다.
한국을 떠나 베트남에 살면서 봄가을은 내겐 없는 계절이었다.
서른여섯 해 동안 내가 본 봄과 가을만이 나의 계절로 남아있다.
미세 먼지가 심하지 않은 푸른 하늘과 흐드러진 벚꽃,
학교 화단마다 노란 봄의 전령 개나리가 한창이었고
붉은 철쭉은 사생대회 단골 소재였다.
해마다 봄이 오면 내 마음은
아파트 단지를 아름답게 수놓던 많은 꽃들에게 달려간다.
그늘 아래서는 여전히 찬 기운이 가득하지만
따뜻한 햇살 아래 봄이 왔다는 걸 크게 외쳐대던
싱그런 꽃들과 아이들.
놀이터에 뛰노는 아이들이 많아지면 어김없이 봄은 와 있었다.
그렇게 꽃 같은 아이들은 꽃향기 가득한 그곳에서
당연히 누리는 봄을 즐기곤 했다.
베트남의 봄은 없다.
3,4,5월이 봄처녀들 설레는 마음을 대변한다면
베트남의 그 석 달은 찜통더위의 절정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나 저녁 식사할 때 에어컨이 없어도 지낼 만한 다른 달에 비해
견디기가 어려운 시기인 것이다.
앉은 소파 위 패드가 축축해지고
저녁 준비 한 번 하면 녹초가 되고 만다.
내 짜디 짠 땀방울이라도 들어갔는지 국이 짜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더위 먹은 거 같다.
더운 걸 알고 있기에 무리한 운동은 금물이며 금주도 실천하고 있건만
갈수록 초저녁에 드라마 한 편 보는 것도 힘들다.
왜 그리 잠이 쏟아지는지.
아니, 베트남에서의 춘곤증인가?
나른한 잠이 쏟아지는 게 어쩌면 그 봄의 춘곤증을 닮는다.
도로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따스한 햇살에 노곤해져 고개가 절로 왔다 갔다 하던.
엉뚱한 생각에 웃고 만다.
한여름에 춘곤증이라니.......
지인들 카톡을 보고 있으면 대개가 꽃놀이 다녀온 사진이 걸려있다.
흰 벚꽃, 노란 개나리, 붉은 진달래, 철쭉
어딜 가도 사람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즐길 거리가 풍성해 얼굴마다 웃음이 가득한 모습이다.
그 속에 함께 못한다는 게 아쉽고
나의 중년에 봄이 없었다는 게 서운하게 느껴진다.
가끔 마음이 울적해지고 막연히 누군가가 그리울 때면
봄 햇살 따라 만개한 꽃길 위를 한없이 걷고 싶어 진다.
치열하게 살아온 나의 40대에 봄 향기 가득한 꽃내음을 선물하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