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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하루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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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n 21. 2024

도를 믿으세요?


젊음의 거리 건대를 지나간 적이 있었다.

어딜 둘러봐도 먹거리가 풍부한

젊은 청춘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거리를

걷노라면 ,


``도를 아세요?``


눈길도 주지 않고 내 갈길을 가면

열심히 따라붙으며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잠시만 시간을 좀 내주시면 안 될까요? 영이 맑아 보여서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지금은 바빠서요.``

발걸음을 재촉하며 난 버블티를 사러 간다.ㅎ

내겐 버블티가 도보다 더 중요하니까.


나에게 말을 걸었던 저 사람,

드디어 누군가와 길거리에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때 내가 들었던 그 얘기를 그들은 저 사람과 나누고 있을 테지..


젊은이들이 많은 곳이 어디에 또 있었던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단정하게 차려입고 전단지를 들고

사냥을 하듯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여호와의 증인이 그랬고

분양사무소에서 홍보하는 사람들.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 등 수많은 목적을 가진 이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걸음을  멈춰 나를 봐달라고 하고 있었다.


90년대에 대학생이 된 나는

그저 넓은 대학 캠퍼스가,

남녀공학인 학교가

수업을 찾아 강의실을 옮겨 다니고

방과 후에 만나는 선배들이 사주는 밥이 너무도 즐거운 나날이었다.


불안한 미래는 신입생인 내겐 찾아볼 수 없는

신입생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과 환희만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같은 건물 내 사범대 신입생이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 오늘 저녁에 나 좀 볼 수 있어?

어디 좀 갈 데가 있어서.``


``그래? 어딘데?

수업 끝나면 그 시간에 가능할 거 같아.

나 혼자 가는 거야?``


``응. 잠깐만 시간 내주면 돼.. 아주 좋은 데야.~``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던 내 친구의 부탁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달리 부탁을 할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자주 만나지도 않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연락이  

궁금했지만 별난 행동이란 찾아볼 수 없던 친구라서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


방과 후 건물 입구에서 만나 길을 나섰다.


신입생이지만 동문회며, 동아리 활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딘 지 물어도 그저 웃기만 하던 그녀.


15분여 정도  걸어서 학교 근처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다.

하숙집과 일반 가정집들이 모여 있는 주택 지역으로

좁은 골목이 많아 다시 찾아가려야 찾아갈 수도 없는 곳이다.


어느 집 앞에 도착한 우리는

반갑게 맞아주는 영이 맑은 이들을 끌어들이는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남자 둘 , 여자 셋


사람 좋은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 우리를 반겨주었다.

잔뜩 늘어놓던 말은  대부분 기억나지 않지만

영이 맑아 보여 인도하고 싶으니 오늘 온 김에 , 제사를 모시고 가라고 했다.

당황한 내 얼굴을 보며 웃음 띤 얼굴로 친구는

별거 아니니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며 너무도 편한 미소를 내게 날려주었다.


제사비용으로 3만 원을 내면 되는데.

돈이 없다고 하니 친구가 빌려준다고.ㅜ

이 무슨 황당스러운 순간인지......


제사상을 준비하는 동안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리에게 저고리를 건네주고,

그걸 난 또 거부하지 못하고 티셔츠 위에 걸쳐 입었다.

제사상 위에 뭐가 있었는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열심히 시키는 대로 절을 수차례 한 것 같다.


돌아보면 왜 친구는 그 집단에 물들었는지,

난 또 왜 불렀는지

거기서 왜 거부를 못하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건지.


그들이 말하는 영이 맑은 사람은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 못 할 사람

뭔가 여백이 많이 보여 자신들의 말을 흡수할 수 있는 사람.

나 같은 어리바리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내 한 달 용돈이 5만 원이었는데 3만 원이면  그 당시의 나에겐 큰돈이었다.

내 소중한 밥값을 그 2시간 동안 배곯아가며 사뿐히 조공하고 왔었다.


그날의 일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3만 원을 갚으며 일단락되었다.

다시 그곳으로 가자는 강요는 없었지만 있었다 한들 내가 다시 갈 리 만무했다.


그들의 목적이 돈 3만 원이었을까?


친구가 나를, 내가 또 다른 누군가를 데려가 엉겁결에 절을 하고  그 비용으로 3만 원을 받는 시스템.


결혼을 하고 나서 그런 부류의 사람을 또 만난 적이 있다.

암웨*,뉴스*

``이거 정말 좋아.

주방 세제 우리가 1년에 소주컵으로 한 컵 정도 먹고 있는 거 알지?

우리 세제는 그럴 염려가 없어. 이걸 봐.``

홍보 영상을 보여주며 `머리에 입력된 `말을 능숙하게 내뱉는다.

그 제품이 얼마나 좋은 지를 강요하는  게 그들의 마케팅 전략이다.

생필품이니 이왕이면 질 좋은 미제를 써라.

검증된 제품이고 영양제도 천연제품이니 얼마나 안전하냐..

블라블라~


놀이터에서 알게 된 앞 동에 살던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 세계가 얼마나 황홀한 지

얼마나 굿 퀄리티의 제품을 제공해 주는 지를 침 튀겨가며 설명해주곤 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부르고

그 사람이 또 다른 형제자매를 엮어

한 집 걸러 한 집은 그 제품을 사용하고

그러면서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그들의 꼭대기만 돈을 버는 구조.


오래전에 내가 본 그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단지 다르다면

길거리에서 하는 호객행위가 아니라 집 안에서,

객관적(?)으로 검증됐다는 증거 자료를 들이밀고

이왕 쓸 물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것.(절 한 걸로 운동한 걸 빼면 아무것도 건질 것 없던 제사보다는 나은... 물건이라도 남았으니...)


독하게 해야 살아남는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나를 자기  회원으로 영입하는 사람들은

끈질기게 홍보하고

독하게 영업을 한다.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위해 당황한 상대에 대한 배려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사람의 약한 고리를 찾아

이 종교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이 제품을 써야  `너도 뭔가 좀 있는 부류`(돈이든 생각이든)로 취급해 준다.


불안정한 미래를 위해

나와 너의 맑은 영혼이 어우러지면

우리는 밝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이 좋은 제품을 너도 쓰고 다른 사람에게 권유해

이왕에 물건 쓰는 거 돈도 벌고 좋은 물건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다른 듯 닮은 모습이다.

발을 담그지 않은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이 강요된 믿음을 주입하는 그들의 방식이

어떤 이들에겐 자신의 재산을 거리낌 없이 바치게 하고

한 달 생활비를 오롯이 제품구입으로 소비하게 만들고야 마는

독한 영업마인드.


그 좋다는 생필품의 과장 광고는  많은 커뮤니티를 통해 까발려지고 있다.

사람의 약한 곳을 파고드는 종교의 폐단을 우리는 뉴스로 많이 접하고 있다.

빠진 사람만 억울한 일이 아니라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과 종교가 허용되는 사회가 문제가 아닐까.


피해자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그런 피해자가 없게끔 하는 사회가 우선이 되어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제발 혼자만 열심히 살고

혼자만 그 종교를 믿고

혼자만 그 제품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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