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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Nov 22. 2023

그럴 수 있어

엄마 딸로 아들 엄마로

그렇게 읽으면 안 되는 거였다.

마음이 서늘한 날, 누가 건드리면 터져버릴 듯한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선선하지만 왠지 울적해서 누구랑 수다 떨고 싶은데  약속이 없는 날


오후에 동생이랑 전화를 했다. 중학생 딸아이를 키우는 동생은 주변 학부모들 등쌀에 스트레스받는다며 일장 연설을 해댔다.

어떤 학원을 보내야 하고 누가 1등을 했고 누가 아이들 중에 왕따이니 놀리지 말자는 둥,,,

엄마들 때문에 속 시끄럽다고 했다.

근처 쇼핑몰에서 갑자기 겁을 주며 뛰어간 남자가 나타나 딸아이가 걱정돼 제부가 아이를 며칠간 통학시켰다는 말도 하면서 세상이 너무 흉흉하다고 불안해한다.

그래, 그래,, 그렇지.

건성으로 대꾸하다 아들 얘기가 나오자 울컥 참았던 설움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걸 느꼈다.

더 이상은 통화가 힘들 것 같다면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상황을 벗어났다.


간신히 추스른 감정을 잡고 어려운 책 말고 쉬운 에세이 하나 읽어보자 했다.

나를  쓰다듬어 줄 만한 쉽고 재밌는 에세이로,

젊은 20대를 함께 한 양희은의 에세이가 올라와 있어 다운을 받아  읽어 나갔다.

70대의 노 가수,

가수 양희은은 잘 알지만 인간 양희은은 몰랐기에 쉽게 본 책이었다.

동생과의 통화로 올라온 내 감정을 애써 눌러 담았는데

그의 책은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그 책을 오늘 보면 안 되었던 것 같다.

별 얘기도 아닌 것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시야가 흐려져 소매로 닦아내며 지워진 내용을 다시 읽고 또 울고,,


어떤 것이랄 것도 없이 쏟아지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혼자 있는 이 방이 너무 겁이 났다.


양희은이 맡아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에게서 ``이별 노트``사연을 받아 들려주었다 한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다 죽음이 눈앞에 왔을 때 남은이들에게 치워야 할 것을 많이 남기지 않기 위해 물건을 정리해야겠다는 사연, 젊을 때 좀 더 제 목소리를 내었더라면 맘 속 상처가 이리 크지 않았을 것이란 사연,

살아생전 효도를 못 해 드렸는데 죽어서는 엄마 옆에 눕겠다는 사연...

여기서 무너졌다.


엄마

엄마라는 단어는 힘들 때 간절히 생각나는 단어이리라.

항상 옆에 있어 이별에 대한 준비도 없고 그 자리에서 나를 무한정으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이라 만만히 보게 되는

언니가 말한 적이 있다. 시댁에서 콩나물을 무치다가 왈칵 눈물이 났다고.

우리 엄마한테는 해드리지도 못한 반찬을 시모님을 위해 하고 있어 갑자기 서글퍼졌다고.

그 말이 젊은 내게 참 많은 걸 말해주었었다.

그 뒤로 그때의 그 마음을 잘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내가 힘들 때 항상 떠오르는 사람은 엄마인 것을,,,


아들이 오랜 시간 연락을 끊고 홀로 서기를 힘겹게 해나가고 있다. 어떤 점이 힘겨운지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모의 가슴은 무너지고 있는데 녀석은 자기의 동굴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모른 채 지내온 게 벌써 8개월에 접어든다. 따로 떨어져 지내고 있어 애써 외면하고 씩씩한 척했는데 봇물 터지듯 힘듦이 올라왔다.

``엄마``라는 단어와 함께.


녀석도 엄마를 떠올렸을 때 이렇게 저릴까?

녀석이 엄마를 찾아주면 좋겠다.

혼자 아파하지 말고 손 잡아 함께 헤쳐가자고,,,,


아들의 일이 먼저였는지, 엄마 옆에 묻히고 싶다는 사연이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아린 마음에 실컷 울고 나니 진정이 되는 기분이다.

어떤 결론은 없어도 마음이 가라앉고 기분이 나아졌다.


마음이 안 내키는 날, 이런 날엔 양희은의 에세이는 읽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내 감정을  지켜보며  아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엄마를 귀히 여기게 되는 소중한 시간을 주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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