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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Nov 20. 2023

작은 화단

나와 함께 한 아이들과 꽃동무

베트남은 고온다습해

가만 놓아두어도 나무랑 꽃이 잘 자라

미친*머리카락 같이 흐드러진

꽃들이라고 남편은 푸념 아닌 푸념을 하곤 한다.

내가 보아도 한국꽃만큼 운치 있지도 이쁘지도 않은 게 사실이다.

화원에서 꽃을 사 와 꽃병에 꽂으면 며칠 지나지 않아 시들어 버리는

짧은 생명력의  꽃을 보노라니

어릴 적 앞마당에서 보던 꽃들이 생각난다.



자가로 이사 온 첫 집이었던 친정 집은  재개발 붐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모여들어  

골목도 좁고  다닥다닥 붙은 이주민 거주지역이었다.

대문도 없이 네 집 내 집의 한계가 모호한 집들이 모인 곳이었다.

누가 저녁으로 뭘 먹는지, 어느 집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는지 금방 소문이 날 만큼 집들이 모여 있었다.



그나마 우리 동네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

대문도 있고 골목도 차가  두 대는 지날 만한  양옥이 모여있는 평화 주택 동네였다.


지금도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부산 시내에서도 보기 드문 낙후 지역이다.


1층 양옥집으로 제법 큰 화단이 있어 철마다 피는 꽃을 볼 수 있었고

마당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셋방도 있어 우리 식구 외에 다른 가족도 함께 살았다.



화단 옆에 옥상으로 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 셋방 집 아이들과  계단 몇 개를 올라가다

뛰어내리는 놀이도 즐겨했다.

그때는 그게 왜 재미있었을까?

그 정도 높이는 제법 겁이 날만도 했는데

서로 경쟁이 붙어 한 칸씩 더 올라가 뛰어내리곤 했다.

내 무릎이 성하지 않은 게 그 탓일까?ㅎ


겨울 동안 앙상한 가지만 보이던 가지마다 새순이 돋고

따뜻한 바람이 느껴질 때쯤이면 하얀 목련이 한 송이 한송이 피어나는 게 보기 좋았다.

크고 흰 꽃을 보노라면 풍성하고 보드라운 그 꽃잎이 탐스런 솜사탕 같았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불어대는데도 하얀 꽃잎은 잘도 버텨주어 봄의 전령으로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빨간 철쭉도 피어날 즈음이면

학교 안도 노란 개나리, 철쭉으로  등굣길이 화려해졌다.

봄이구나!!

추운  겨울이 다 갔구나...

새로운 학급에서 새로운 친구와 선생님과 맞이하는 봄은 그렇게 목련꽃, 철쭉과 함께 왔다.

5월이 되면 담벼락을 따라 올라가는 빨간 장미가 화단을 에워쌌다.

가시가 많은 장미..


그 당시 인기 많았던 ``들장미 소녀 캔디`` 만화 속 장미가 내 집 화단에도 한가득이었다.

꽃을 따다  한 장씩 떼어 책갈피도 만들고

가시를 따로 떼어 코에 올리며 코뿔소 흉내도 내보고.

장난감이 귀하던 그때는 꽃이랑 돌멩이, 흙 등 모든 것이 우리네 장난감이었다.


``너는 엄마, 나는 아빠

     넌 딸이고

    자, 이제 아빠가 집에  왔어~~인사해야지~~``


색색이 꽃들은 반찬이 되고 고운 모래는 밥이 되어

나무판자에 늘어놓고


``식사하세요~~``

엄마처럼 목소리에 애교도 들어가고

아빠처럼 굵은 목소리도 내어가며

한참을 놀던 소꿉놀이도

플라스틱 밥그릇에 모습을 감춰버렸다.


여름이 오면  창을 열고  선풍기 틀어  마루에 누워 있기를 즐겼는데

그때 보는 하늘이 참 좋았다.


여름은 으레 더운 계절이니

땀이 나는 것도 불쾌 한 지 몰랐고

그저 엄마가 시장에서 사다준 콩국물 한 그릇

수박 한 조각에 시원한 선풍기 바람이면 족했다.


엄마가 마루에 앉아 손에 꽁꽁 처매준 봉숭아 물들이는 것도 여름 한낮의 즐거움이었다.


매니큐어가 흔하지 않던 때

봉숭아 물든 빨간 손톱은 엄마의 기다란 빨간 손톱 같아 어깨가 으슥하고는 했다.


밤이면 옥상 평상에 모기장 치고 가끔 잠도 잤는데

어쩌다 떨어지는 별똥별엔  다 같이 탄성을 지르며 소원 빌기.


새벽 서리에 잠이 깨어도 찌뿌듯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았었다.

그저 밖에서 잘 수 있다는 게  신나는 일이었을 뿐... 그게 캠핑이라도 되는 냥,



가을이 오면

마루에 누워 바라본 하늘은 구름이 더 높았고 공기는 더 맑았다.

화단 가득 피어있는  코스모스가 가을을 데려오고

분홍빛 하양빛 코스모스는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잘도 한들거렸다.


지천에 널린 코스모스 꽃이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게 해 주고

골목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6시  애국가가  울리면 뛰놀던 아이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같이 애국가를 불렀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말로 순진한 모습이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나뭇잎은 그 색을 잃어가고 한 잎 두 잎

화단 흙 위로 떨어져 내렸다.

단풍나무, 은행나무는 없었지만 나뭇잎이 초록을 잃고 빛이 바래가면

가을이 지나가는 겨울 길목임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울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면

우리 집 화단에 동백꽃이 피었다.

사진 속 동백꽃은 눈을 품고 있지만

우리 집 동백꽃은 눈을 만난 적이 없다.

따뜻한 부산에서 눈은 귀한 손님이었으니.


차가운 바람에 앙상한 가지만 보여주는 겨울 화단이지만

빨간 동백꽃만이 그 자리를  찾아와 주었었다.



돈을 벌어 새로 집을 짓고자 한 아버지의 소원대로

우리 집은 2층 청기와 양옥으로 새 단장을 했다.

하지만 우리 집 화단은 30여 년 전 자취를 감추고 작은 공간으로만 남았다.


나의 4계절을 함께 해주던 우리 집 화단 속 꽃들은 작은 화단에서 힘을 잃어가다

주차공간이 부족한 골목 탓에 그나마 있던 공간을 내주고 말았다.


그 뒤로 계절을 알려주던 꽃은 티브이에서 , 길거리  어느 화단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 많던 아이들도 골목 어디에서도 보이질 않는다.

6시 국기 하강식도 사라진 지 오래된  늦은 오후,

텅 빈 골목 한 귀퉁이에 놓인 작은 화단을 본다.

아무것도 피어있지 않은

흙먼지만 가득한 시멘트 구조물


나의 화단은 사라진 아이들 소리처럼 없어져 버렸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이쁜  화단은

여전히 봄엔 목련

여름엔 장미

가을엔 코스모스

겨울엔 동백꽃을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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