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문난 이작가 Aug 13. 2024

새벽 수영, 계속해야 하나?

수영에세이 첫 이야기 - 꾸준함에 대한 도전

   주 6일 새벽 수영을 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주 4일 6시 수영 강습, 주 1일 6시 수영 개인 레슨, 토요일 7시 자유 수영이다. 6시, 7시를 새벽으로 구분하긴 모호한 구석이 있으나, 기상 시간은 정확히 5시 10분에 맞춰져 있으므로 쉬이 퉁쳐서 새벽수영이라 부르기로 한다. 또한 매일 그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므로 '새벽'이라 치부해 줘도 뭐 그리 대단한 허용은 아닐 것이다. 거의 매일, 이 이른 시간에 기상하여 아무런 갈등 없이 비루한 몸을 이끌고 수영장까지 가는 일상을 1년 넘게 하고 있다.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중독이라고 해야 할지. 


    처음 시작은 '불면증'에서 기인했다. 수면 시간 동안 화장실을 두어 번 가는 것도 문제였지만, 다소 예민한 성격인 나는 숱한 걱정과 불안을 현실에서 부족했는지 꿈까지 끌고 가는 몹쓸 습성이 있어, 눈을 감고 있어도 의식은 이불에 눕기 시작한 때와 똑같은 상태로 일어나곤 했다. 그러던 중, 직장 동료가 수영을 제안했고, 처음엔 새벽마다 동료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인사를 나눈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아 미뤄뒀다가, 새벽수영을 하면 잠이 잘 온다는 말에 냉큼 등록을 했다. 사실, 17년 전에 접영까지 배웠던 경험도 있어 수영을 얕잡아 본 이유도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새벽 수영은 확실히 불면증을 퇴치하는데 크나큰 공헌을 했고, 시작한 계기를 따져보면 분명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새벽'을 붙여줘도 충분하다는 근거로 여러 희생에 방점을 찍었듯이, 여전히 이 걸 계속해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양보할 일이 많다. 


   일단 하루의 컨디션을 생각해서 충분한 잠을 이루려면 10시 정도에 취침을 해야 하고, 사시사철 이십사 시간 휘황찬란하게 돌아가는 서울 생활을 고려하면 10시에 취침한다는 것은 거의 사회생활 반은 접었다고 볼 수 있다. 내일 새벽의 수영을 위해 어느 장소에서든 8시부터 불안해지고, 늦어도 9시부터 엉덩이 뗄 준비를 해야 되니 말이다. 더욱이 직장도 다니고 글도 쓰는, 내 투잡의 특성상 10시 취침은 도대체 글을 쓰려는 마음이 있는지 의심조차 갖게 한다. 공연이나 영화 관람은 될 수 있는 한, 수영이 없는 일요일 전 날인 토요일로 예약해 둔다. 한 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주중에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7시 30분에 시작한 공연이 3시간 10분 러닝타임이라 10시 30분을 훌쩍 넘긴 시간에 끝났다. 3시간 넘게 공연한 배우들이 커튼콜을 하며 수시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는데, 그 노고에 박수갈채를 보내면서도 내일 새벽 수영을 가야 한다는 강박에 배우들이 그만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새나라의 어른이'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새벽 수영에 성공해도 뿌듯함을 살짝 제쳐두면, 다소 너무 일찍 'ON'버튼을 누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분주해진다. 금방 들어차는 샤워실 경쟁을 뚫어야 하고, 드라이기 4개를 차지하는데 속도를 내야 하고,  집에 돌아와 부리나케 수영 용품을 세탁해야 하고, 대충 치장한 후 터지기 직전 김밥철을 타고 직장을 가야 한다. 무사히 직장에 도착한 후, 나름 운동한 게 아까워 단백질을 섭취한답시고 삶은 달걀을 까먹고 있노라면 문득 다시 곱씹게 된다. '새벽 수영, 계속해야 하나?' 


    이른 취침, 이른 기상, 분주한 아침 등 '새벽 수영'으로 인해 감수해야 할 것 외에도 '수영'이라는 종목으로 인해 감수하기 쉽지 않은 스트레스와 수태기 등의 또 다른 문제가 있지만 이것은 나중에 차차 풀어놓기로 하자.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새벽 수영을 다니고 있고, 심지어는 새벽 수영을 좋아하게 되었고,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새벽 수영을 권유하는 수영 전도사가 되었다.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도 수영 대회만 찾아볼 정도가 되었으니, 현재 스코어로 수영에 심취되어 있다는 표현은 정확하다. 


   무엇보다 새벽 수영은 나의 생활과 생각을 매우 단순하고 간결하게 만들어주었다. 불면증 치료한 것을 넘어서 쓸데없이 주렁주렁 달고 다녔던 후회와 불안을 던져버리게 만들었다. 한 시간 내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강사 지시에 따른 수영드릴을 하다 보면 모든 잡념은 자연스럽게 봉쇄된다. 아니, 따져보면 기상 시간에서부터 직장 가기 전까지 분주한 아침은 눈앞의 퀘스트들을 완수하는데만 급급하다. 퇴근 후에도 취침 전까지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에 그날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느라 바쁘다. 후회와 불안이 들어올 잉여의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진 것이다. 하여, 새벽 수영으로 자연스럽게 '현재'에 집중하는 일상으로 꾸려졌다. 이 단순하고 간결함이 매우 만족스럽다. 


   또한 새벽 수영은 모처럼 오랜만에 '도전'이란 키워드를 선사했다.  '수영 실력에 대한 도전' 뿐 아니라 '꾸준함에 대한 도전'. 남녀노소, 신장, 체력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그야말로 실력으로 줄 세우는 게 허락되는 수영판에서 과연 내가 살아남을 것인가, 숱하게 좌절하고 열받고 실망하지만 방법이 없다. 그저 연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해야 할 뿐. 유일한 희망은 꾸준히 하면 실력이 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동아줄이다. 보탠 노력에 비하면 아주 작은 발전이지만, 그래도 처음의 나보다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는 걸 보면, 이 도전이 그리 헛된 일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이 작은 몸도 부지런히 다듬으면 '수영'이란 특정 운동종목을 할 줄 알게 되고, 언젠가는 '잘' 할 줄 알게 된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설레게도 한다. 


   게다가 수영을 하면서, 내가 살아가는 삶의 형태와 기막히게 오버랩되는 뜻하지 않은 순간에 맞닥뜨리곤 한다. 그때마다 번뜩이는 통찰을 얻고, 이 것을 꼭 기록하고 싶다는 욕망이 인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수영에세이를 쓰기에 이르렀다. 이미 빠져나갈 수 없는 곳까지 수영에 스며들었나 보다. 앞으로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을 꺼내듯, 차곡차곡 보다 더 섬세한 부분까지 수영을 만져보며 기록할 생각이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새벽 수영을 갈 예정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