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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난 이작가 Aug 20. 2024

수영 한달 후 중급으로, 교만 그 잡채

수영 에세이 두 번째 이야기 - 기본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후회와 불안을 침대에 주렁주렁 매달고 한껏 우울해하며 밤잠을 설치는 세월을 청산하겠노라 결국 수영장을 등록했다. 다른 시간은 모두 등록 마감되었고, 새벽 6시 반에만 한 자리 남아있다는 소식에 바로 달려갔다. 이미 17년 전에 수영을 8개월 정도 다녔던 전력이 있었고, 멋지진 않지만 그럭저럭 양팔을 벌려 살려달라는 제스처로 접영까지 할 줄 알기에, 초급반에 배정되자 어깨에 쓸데없는 뽕이 들어갔다. 초급반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야말로 물에 뜨는 것도 쉽지 않아 25m를 출근길처럼 사람체증으로 원활하지 않은 흐름을 보였다. 어떤 모습으로든 25m를 헤엄쳐 갈 수 있었던 난, 그때부터 내가 왜 초급반에 배정되었는지 속불만이 시작되었고, 급기야는 강사님에게도 물어볼 정도로 교만이 넘쳐흘렀다. "저는 예전에 접영까지 배웠는데요." "그래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해요." 이 말이 화근이었을까, 난 등록 후 한 달 만에 중급으로 월반했다.          

      


    중급반으로 월반한 직후, 별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한 달을 보냈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내가 제대로 반을 찾아왔다는 착각과 이미 중급반에 정착한 회원님들과 친분 쌓기와 강사님 강습 스타일에 적응하느라 분주했다. 정신을 조금씩 차려갈 때쯤, 내 수영 모든 부분이 총체적 난국임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자유형 할 때는 힘을 잔뜩 주고 하니, 남들은 25m를 간 후 바로 턴을 하고 여유 있게 돌아오는데, 나는 수영장 벽에 닿자마자 망망대해에서 구조선이라도 만난 것처럼 벽을 잡고 호흡을 가쁘게 내쉬어야 했다. 배영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하늘 위 구름처럼 추진력 없이 둥실둥실 떠 있기 일쑤였고, 평영은 손과 발의 리듬이 교차되지 못하고 손뼉 치듯 한꺼번에 이루어졌다. 접영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급에서 더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는 자각은 못했다. 그저, 초중급반도 필요하겠다는 어설픈 생각을 했고. 그렇게 정신없던 찰나, 강사님이 개인레슨을 권했다. 나 같은 사람은 개인 레슨으로 조금만 수정하면 금방 좋아질 케이스라고. 그래서 결국 수영 등록 한 달 만에 중급으로 월반하고, 두 달 만에 강습과 레슨을 병행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                


    이후, 세 달 동안 그렇게 강습과 레슨을 병행했지만 이렇다 할 놀라운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놀라운 변화는, 등록 후 한 달 동안 초급반에 함께 있었던 회원들이 중급반으로 옮겨 왔을 때 일어났다. 25m도 고속도로처럼 원활한 흐름을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댔던 바로 그 회원들이 25m 왕복을 여유롭게 몇 바퀴씩 해대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모든 영법의 자세가 나보다 나았다. 나도 분명 빠지지 않고 중급반을 다녔는데, 레슨까지 했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 저들은 나보다 젊잖아, 나보다 신장이 크잖아, 팔다리도 길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지 않고는 모든 게 억울하고 서럽게 느껴져 당장 때려치우고만 싶어 졌으니. 그때서야 비로소 아차 싶었다. 오래전에 조금 배웠던 걸 가지고 내가 지나치게 교만했구나, 차라리 처음 배우는 이들처럼 겸손하게 차근차근 배웠으면 그들만큼 잘하진 않더라도 총체적 난국에서 어디부터 고쳐야 할지 난감해하진 않았을 텐데. 뜻하지 않은 후회가 일었다. 그리고 그 후회는 두고두고 지속되었다.                



   조금만 곱씹어보면, 이런 일은 비단 이 수영 사건에서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숱한 일들에서 이와 똑같은 실수를 하고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다. 왜냐면 쓸데없이 순간의 인정욕에 사로잡혀 아는 체를 하고 잘난 체하는 습성이 고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만 겸손했다면 천천히 가는 것 같지만 더 빨리 갈 수 있고 더 튼튼하고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난 순간의 교만으로 출발만 일렀을 뿐, 결국 뒤처지고 얄팍해지는 행로로 어리석게 전환시켰던 것이다. 요즘도 차근차근 기본을 쌓고 중급반에 올라와 나날이 기량이 늘어가는 회원들을 보노라면 이 교훈이 새록새록 사무친다.         

       


    수영을 처음 시작해서 중급반까지 올라온 회원들로부터 받은 충격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그들보다도 늦게 들어온 초급반 회원들이 중급반으로 올라와서 내 앞에 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난 점점 뒷자리를 차지한 중급반 만년 과장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말로만 듣던 수태기도 세게 왔었다. 이렇게 실력이 늘지 않는 운동을 하면서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있을까 싶어 그만 둘 계산도 진지하게 했었다. 하지만 그만두지 않았다. 한 번 쉬면 다시 시작하기 힘들다거나 다시 자리 나기 쉽지 않다는 부차적 문제는 제쳐두고, 이번엔 내 실수를 만회하고 정면돌파를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솟구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뭐 하냐고? 개인 레슨으로 기초를 쌓고 있다. 솔직히 초급반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시기를 놓쳤고, 여의치 않았다. 하여, 만년 과장 자리에서 강습을 이어가고 주 1회 개인레슨으로 차근차근 다시 기초를 배우고 있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어 조언을 구한다면,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답해줄 것이다. '기본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라. 그게 늦은 것 같지만 제일 빠른 길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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