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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난 이작가 Aug 27. 2024

수영 7개월 후, 다시 처음으로

수영 에세이 3편 - 기본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

    강습과 더불어 개인 레슨을 받으면 바로 교정이 되고 금방 실력이 늘 줄 알았다. 처음 레슨을 권유한 강사님도 회원님은 레슨 '조금'만 받으면 '금방' 좋아질 거라 했다. 그 '조금'이 대략 3개월 정도면 될 줄 알았고, 그 '금방'이 짧은 시간 눈에 띌 정도로 4가지 영법에서 도드라진 변화가 가능하다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3개월 후에도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었다. 내 수영 영법 중 가장 큰 문제점을 평영으로 진단한 강사님은 3개월을 거의 평영 발차기에 할애했는데, 아무리 차대도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린 지 감이 서지 않았다. 어떤 날은 강사님이 드디어 본인 말을 이해했다는 듯 '그렇지!'를 연발했는데, 그런 날도 난 평소와 비슷하게 찼다는 생각을 했고, 어떤 날은 왜 또 무릎을 그렇게 벌리느냐, 왜 발목을 꺾지 않느냐고 답답한 듯 나무라는데, 그런 날도 난 뭐가 잘못되었다는 건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뒤늦게 유튜브를 보며 강사님의 답답함을 헤아려 본 내용은 이렇다. 무릎 사이를 적게 벌려 강하고 빠르게 차는 것을 '윕킥'이라 하는데, 이 동작이 잘 되려면 발목 유연성이 좋아 잘 꺾여야 한다. 그런데 발목 유연성이 좋지 않을수록 무릎 사이가 벌어지게 되어있고, 무릎 사이를 벌리고 발을 모아 차는 것을 '웨지킥'이라 한다. 나는 당연 후자에 속하니, 되지도 않는 '윕킥'을 흉내 내지 말고, 생활 체육인으로서 분수에 맞게 '웨지킥'을 차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난 지금도 평영 발차기를 하면서 내 발차기가 둘 중 어디에 속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평영 발차기 늪에 빠져 헤매며 3개월 레슨을 채우고, 미리 계획했던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지난겨울(호주는 여름), 수영 종주국인 호주에 1개월 정도 체류했는데, 우리나라 같은 실내 수영장을 찾기 쉽지 않았다. 내 노력이 미진했을 수도 있지만, 시드니든 멜버른이든 버스만 타고 가면 멋진 해변이 펼쳐져 있어 바다 수영과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조건이었기에, 굳이 실내 수영장이 많이 있을 이유도 없을 듯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새벽 수영을 안 하고 지내니, 금단현상이 나타났고, 한국의 새벽이 그립기까지 했다. 하여, 서울에 돌아온 후, 바로 새벽 수영을 다시 강행했다. 중급 강습반 강사님은 바뀌어 있었고, 내 앞의 회원들은 보다 여유롭게 강습 내용을 흡수하고 있었다. 한 달 만에 강습 간 첫날, 핀데이였긴 하지만, 강사님은 '자유형 20바퀴'를 지시했는데, 난 '설마'라는 계산과 함께 두 바퀴를 잘 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뒤늦게 회원들이 쉼없이 20바퀴 도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내가 제대로 들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 달 만에 눈앞의 장벽이 나무에서 콘크리트로 바뀐 듯, 아찔해지는 순간이었다. 난 여지없이 두어 번 쉬어가며 그들과 발맞추려 그야말로 애를 써야 했다. 그리고 새벽 수영에 복귀한 지 한 달 만에 다시 개인레슨을 신청했다. 


   

    새로 바뀐 강사님은 어떤 영법을 배우고 싶냐고 물었고, 평영 레슨에 지친 난, 별 고민 없이 '접영'이라고 답했다. 여전히 레슨을 '조금'만 받으면 '금방' 좋아질 거라는 환상에 젖어있었나 보다. 강사님은 접영을 몇 번 가르치더니, 다시 자유형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자유형 팔꺾기를 가르치다 다시 팔피고 자유형을 가르쳤고, 급기야는 호흡과 발차기로 돌아갔다. 결국, 수영 시작 7개월 만에 기본으로 돌아간 것이다. 17년 전에 잠깐 수영을 배웠다는 교만으로 한 달 만에 중급으로 월반한 폐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난 백기 투항했고, 이게 맞다는 데 합의했다. 총체적 난국에서 도드라진 부분만 단도리하겠다고 이 것 저 것 수정하면서 뱅뱅 도는 것보다 처음부터 제대로 하는 것이 제일 빠르고 정확한 것임을 인정했다. 그래서 이후로도 자유형 기초를 끊임없이 갈고닦고 있다. 롤링과 글라이딩 드릴에서 다시 소급해 머리를 고정하고, 물 잡기를 제대로 하는 연습까지. 그러면서 깨달은 건, 절대로 레슨을 조금만 받으면 금방 좋아질 수 없다는 것. 그야말로 레슨과 연습을 병행하여 많은 노력을 들이면, 그나마 아주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 수영을 잘 몰랐을 때, 수영을 너무 얕잡아봤다는 것. 



    이러한 일련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제는 조바심 내지 않고 묵묵히 강습과 레슨과 자유수영을 병행하고 있다. 돌아보니, 비단 수영뿐 아니라, 삶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떤 일을 정확히 알지 못할 때, 그 일을 얕잡아보고 쓸데없는 호기를 부렸던 일. 그 일을 알면 알수록 얕잡아 볼 수 없는 숙련과 깊이가 요구됨을 깨닫게 되었던 일. 그래서 숙연해지고 겸손해져 묵묵히 열심히 해야겠구나 나를 다잡아야 했던 일. 하긴 세상에 얕잡아 볼 일이 어디 있으랴. 어느 분야든 고수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의 시간과 정성을 들여 겨우 닿은 곳에서도 초보자보다 더 열심히 더 꾸준히 그 일에 매진하고 있는데. 하여, 겨우 하루에 한 시간 남짓 하면서 왜 이리 발전이 더딘 거냐며 푸념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이제라도 기본을 다지니 다행이라며 안도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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