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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난 이작가 Sep 03. 2024

스노클 - 그 머리를 흔들지 마시오!

수영에세이 네번째 이야기 - 목표를 고정시키고 나아가기

   개인 레슨을 받은 지 한 달여 지난 후, 강사님이 스노클을 가져오라고 했다. 명분 없는 수영복 쇼핑이 아닌, 모처럼 필요한 수영장비를 구입하게 되니 자못 흥분하여 수영 커뮤니티와 쇼핑몰을 폭풍 검색한 끝에, 아리따운 보라색 스노클을 장만했다. 오리발 이후로 처음 추가되는 품목이다 보니, 내가 꽤 수영 진도가 나갔나 싶은 으쓱함도 있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 이것도 나만의 큰 착각이었다. 나에게 스노클이 필요한 이유는 고급 스킬이나 영법의 진도를 나가기 위함이 아니라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인 머리를 고정시키는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중급반에서는 스노클 이용한 수업이 없었기에, 따로 개인 레슨을 받으니 새로운 것도 한다고 기대하고 갔건만, 여전히 두터워지지 않는 기초를 다지기 위한 강구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강구책으로부터 도움을 받기까지 새로운 고난의 여정이 생겼다. 스노클 호흡을 할 줄 몰랐다. 스노클을 통해 호흡하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 필요가 없기에, 머리를 고정시켜 몸의 균형감을 잡은 상태에서 교정이 가능할 텐데, 나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스노클에 물이 차면 '투- 투-'하며 세차게 내뱉으라는데, 도저히 되지 않아, 물이 차면 금방 익사할 사람처럼 가뿐 숨을 몰아쉬며 허우적대다 겨우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그야말로 실수로 물에 빠진 사람의 형국이었다. 구조대를 부르는 듯한 접영의 자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적인 공포감이 수반되는 생존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강사님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지상에서 호흡을 길게 쉬고 길게 뱉는 연습을 시킨 후, 다시 장착을 시도했다. 그렇게 스노클 호흡 대환장쇼가 두 주정도 이어진 뒤에야 스노클의 효용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스노클은 그동안 강사님의 조언을 새록새록 곱씹게 만들었다. 팔을 끊기지 않게 부드럽게 돌리라는 게 뭔지, 롤링은 가운데에 멈추지 않고 오른쪽 왼쪽으로 왔다 갔다 해야 한다던지, 스트로크를 자주 하지 말고 글라이딩을 해주라던지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롤링을 해도 머리는 고정시키라는 것. 스노클을 끼니, 차 안에 놓은 흔들 인형처럼 흔들어대던 머리가 정말 고정되었다. 몸을 왔다 갔다 해도 머리는 수영장 바닥 곧은 줄을 따라 나아가니 비로소 수영다운 수영을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흔들리지 않는 중심 기둥을 잡은 것처럼. 



   지금은 스노클을 자주 이용할 수 없지만, 착용이 가능해지면, 나는 그 어떤 드릴보다 머리를 고정시키고 롤링하는 연습을 많이 한다. 특별히 교정이 필요한 부분이라서 기 보다 흔들림 없는 축을 가지게 된 게 더없이 좋고, 내 삶을 반추하면서 한없이 흔들리던, 여전히 흔들리는 나를 다잡아주고 싶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나름 부지런히 해왔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 난 줄곧 흔들렸다. 내가 너무 멍청한 게 아닌가 세상을 모르는 게 아닌가 타박을 해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을 둘러볼수록 앞으로 더 나아가지 않는데도 중심을 놓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머리를 고정시키니 어떤가, 그 어느 때보다 쭉쭉 나가지 않는가? 하여, 더 이상 둘러보지 말라고 나를 다독인다. 이미 먼 길을 왔기에, 지금은 더 둘러보면 안 된다고.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얼마나 큰 쾌감을 주는지 맛보지 않았냐면서. 



   내일은 개인 레슨이 있는 날이니, 또 스노클을 들고 가야겠다. 머리를 고정시키고 지느러미처럼 몸을 움직이면서, 모처럼 나를 다독여줘야겠다. 잘 가고 있다고. 중심을 더 꽉 잡고 밀어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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