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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난 이작가 Sep 10. 2024

왜 있잖아, 그 수영복 많은 아줌마

수영에세이 다섯번째 이야기 - 진짜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기

    사람들이 이름 모르는 누군가를 일컬을 때, 흔히들 짐작 가능한 특징을 말하기 마련이다. 같은 수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나'를 언급할 때, 줄 수 있는 힌트는 다양하다. 키 작고 보통 체형의 아줌마, 수영은 잘 못해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여자, 만년 과장처럼 오랫동안 중급반 뒤에서 수영하는 사람 등. 사실 내가 없는 곳에서 불리는 특징이니 정확히 알 길은 없다. 허나, 어느 날 샤워하다가 중급반 옛 동료 - 지금은 상급반으로 간 - 로부터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단서를 듣게 되었다. "작가님, 상급반에서 작가님 어떻게 부르는 줄 알아요?" "......" "수영복 많은 사람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에도, 나는 막 어제 택배로 받은 새 수영복을 개시하고 있었다. 하긴 그래서 그 단서를 던졌는지도 모른다. 뭐 그리 창피한 일도,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내 입가엔 겸연쩍은 미소가 흘렀고, 딱히 이렇다 할 응대를 못 했다. 분명 뭔가 찔리는 구석도 있었으리라. 다른 모든 특징을 제치고 수영복 많다고 하면 금방 알아챌 만큼 유독 수영복이 많구나를 알아채니, 모든 이가 나를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 많은 이로 인식하고 있구나까지 알아채게 되었다.                

   


    사실,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 몸매 교정 착시를 계산하며 제주도 해녀 같은 검은색 수영복으로 일관했다. 이후엔 엉덩이와 가슴을 안정적으로 덮어줄 진한 색 수영복으로 단벌수영인에서 탈피했고. 그러다가 점점 수영 관련 유튜브와 커뮤니티를 오가면서 수영복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꽤 화려하고 유혹적인 세계였다. 수영복 브랜드명을 알게 되고 그 사이트를 드나들면서 그들만의 용어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가령, 졸린이란 브랜드를 가면 색깔에 붙는 이름이 있었고, 백스타일과 엉덩이 끈 형태에 따른 이름이 있었으며, 그에 따라 달라지는 힙커버 정도까지 숙지해야 했다. 틈만 나면 수영 유명 브랜드 사이트를 검색하고, 심지어는 수영 장비를 소규모로 자체 제작하는 사이트까지 넘나들게 되었다. 수영복이 출시되는 날짜를 기록해서 광클릭으로 신상 수영복 구매에 성공하면 도파민이 넘쳤고, 수영복에 맞춰 수모 수경 코디한 게시글을 중독처럼 찾아보면 눈이 즐거웠다. 그렇게 물옷이 쌓여갔다. 차라리 그 시간과 정성으로 교정에 도움이 되는 영상을 보면 좀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을.                



    따지고 보면 늘 이랬다. 핵심에 들어가기 힘들거나 싫어지면 한참을 딴짓하며 배회했다.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도 문구류를 정리하는데 정성을 들이거나 수다 삼매경으로 줄곧 도서관에 가방을 방치했고, 글을 써야 할 때도 발동 거는데 시간을 할애하다 정작 나중엔 시간이 모자라 후회했고, 일해야 할 때도 하릴없이 이것저것을 검색하며 뜸 들이다 시간에 쫓기곤 했다. 늘 해야 할 일에 진입하기 전, 회피하려는 몸짓이 부산했다. 직면에 대한 두려움인지, 달콤함에 쉬이 빠지는 어리석음인지, 영역은 달라도 늘 이행하는 여정은 비슷했다.                


    하여, 수영도 실력이 나아지지 않으니 수영복을 사고 그에 어울리는 수모를 사고 또 그에 발맞춰 수경을 사는 소비에서 뿌듯함을 대체하고 있었다. 정작 수영장에서 다른 사람을 볼 때, 그 사람 수영장비가 달라졌다는 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자유형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접영이 얼마나 멋진지, 배영 평영이 얼마나 빠른지, 수영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보면 왠지 모를 경외감이 차올라 넋 놓고 바라보게 된다. 수영 강습받는 수영장에서 수영 잘하는 사람이 눈에 띄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난 그런 실력을 흉내 내는데 힘쓰기보다 물에 들어가기 전 어떤 옷을 걸치느냐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운동은 장비빨이라고 에베레스트 갈 듯한 등산복을 입고 뒷산에 오른다는 우스갯소리로 퉁칠 수도 있다. 그리고 수영을 잘하면서 수영 패션에 관심 갖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어느 것도 나에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나는 또 수영하기에 앞서 언저리를 배회하는 행동에 부지런했을 뿐이기에.                



    얼마 전에도 수영복이 몇 개나 되냐는 수친 질문에 셀 수 없이 많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곤 괜히 머쓱해져서 수영을 못하니 수영에 대한 흥미를 놓지 않으려고 수영복을 산다는 이상한 변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 날, 유체이탈처럼 이 변명 뒤에 숨어있는 날 헤집어보게 되었다. 중요한 것에 몰입하지 않는 한심함을 애써 치장하는 치졸함. 그래, 또 해야 할 일에 진입하지 않고 다른 곳에 에너지를 탕진하고 있구나. 집에 돌아오면서 나의 습성을 반추했고, 이젠 수영 실력을 늘리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간 수영장 사람들이 나를 변별했던 특징을 희석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음주 금단현상처럼 구매 클릭을 못해 잠시 손이 떨릴 수도 있겠지만. 혹여 실력이 늘면 그때 포상 개념으로 새로운 수영복을 사겠다는 호기를 부려본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일컬어지는 날도 오려나. 왜 있잖아, 수영 열심히 하더니 실력 많이 늘은, 옛날에 그 수영복 많던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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