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에세이 일곱번째 이야기 – 무한 경쟁 체제에 함몰되지 않기
초급일 때는 그리 뒤에 서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 접영까지 배웠던 전력이 있었기에 물에 뜨는 것부터 시작하는 사람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영법을 제대로 구현한다기보다 좋지 못한 습관이 덕지덕지 붙은 채 영법을 흉내 내고 있다는 게 드러나면서 중급부터는 점점 뒤로 밀려났다. 그렇게 중급 만년 과장이 되어갈 무렵, 6개월마다 바뀌는 강사 로테이션 규정에 따라 새로운 강사님과 수업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중급반에서 뒤로 밀려도 초급반에서 갓 올라온 회원님들보다는 앞에 서는 관습법이 통용되고 있었는데, 새로 온 강사님은 수업 첫 시간에 어이없게도 날 맨 마지막에 세웠다.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꽤 억울해했다. 초급반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무르익지 않은 자세를 보거나 내 속도가 앞 사람을 따라잡고도 남을 때는 속으로 투덜대기도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속앓이는 금방 정리가 됐다. 초급반에서 올라온 젊은 피들의 발차기는 워터파크를 방불케 했고, 자세는 좋지 않아도 체력은 모터를 단 오토바이들처럼 쉼 없이 레인 왕복이 가능했다. 가끔 지시사항을 완수하지 못하고 한 번씩 쉬어가는 내가 순서를 앞으로 당겨야 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밀리면서, 이제는 뒷자리가 당연히 내 자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강습과 자유수영 출석률도 그들보다 높고, 심지어 레슨까지 받는데도 뒷자리 탈출은 쉽지 않다.
뒷자리에서 수영하게 되면, 배제되는 느낌이나 서운해지는 상황을 자주 겪게 된다. 내가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다음에 수행해야 할 내용 설명이 끝나있는 경우가 많고, 간혹 강사님 시범도 놓치게 된다. 모두가 주목하는, 화려한 1번 주자와는 달리, 마지막 주자는 기다려줘야 하는 배려의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래서 흐름이 끊기지 않게 도착하려 애쓰고는 있지만, 그렇게 지시 동작 마무리 역할을 열심히 하면서 문득문득 잔인하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들어오곤 했다.
성별, 나이, 체력, 재능에 상관없는 줄 세우기라고 할까? 수영 강습에서는 당연한 이치다. 원활한 흐름으로 수영이 이루어져야 강습에 임하는 회원들 모두 만족할만한 운동량을 채울 수 있을 것이기에. 여자라고 고령이라고 체력이 약하다고 우대해서 앞 줄에 세워줄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줄 세우는 게, 경쟁의 무한루프에 빠진 듯한 느낌을 준다.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바로 따라붙어 나갈 수 있느냐로 모든 평가가 이루어지고 그에 걸맞춰 순서가 정해진다는 게, 당연하지만 쉽게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긴 따지고 보면, 어디 수영뿐이겠는가? 능력으로 재단하고 줄 세우는 것은 내 인생에서만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방법이었는데. 학교에서도 부모의 재산이나 지원의 정도나 공부할 수 있는 여건 등에 상관없이 줄을 세웠고, 사회에서도 어떠한 조건도 고려하지 않고 능력에 따라 직급이 정해지면,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직급에 따라 줄을 서지 않았는가? 물론, 상황에 따른 변주가 있겠지만,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살면서 경쟁 아닌 곳이 없고, 경쟁에서 앞서는 사람은 우위를 차지하고, 뒤처지는 사람은 꽁무니에 붙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뒷줄에 서는 날이 길어질수록,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져 갔다. 억울함이나 불만이 사라지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내 체력에 맞게 쉬어가도 전혀 눈치가 보이지 않았고, 굳이 앞으로 가려는 야망에 전전긍긍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그날그날 운동을 잘 따라 한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만족스러워할 줄 알게 되었다. 자신을 위로하고자 마음을 비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줄의 위치에 대한 의식을 놓아버리니, 마음이 편안해진 건 확실하다.
하여, 무한 경쟁 루프에 함몰되지 않기로 했다. 수영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 것이며, 하루빨리 상급반을 간다고 무엇이 크게 달라지겠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수영을 즐기는 것이고, 영법을 수행하는 나의 자세가 어제보다 나아지는 것이고, 지치지 않고 꾸준히 수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다른 일에서도 내가 쓸데없이 경쟁에 함몰되어 순간을 못 즐기고 괴로워하지 않았는지 반추해본다. 그래서 이젠 잔인하게 줄을 세우든 말든 신경 쓰지 않기로. 그저 내 능력치대로 재미있게 수영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