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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난 이작가 Oct 01. 2024

도대체 힘은 어떻게 빼는 거야?

수영에세이 여덟 번째 이야기 – 힘을 빼면 많은 일이 수월해진다.



   수영하면서 제일 이해되지 않는 조언이 ‘힘을 빼라!’였다. 강사님들이 여러 동작을 설명하면서 종종 시범을 보여주지만, 힘을 빼라는 조언에는 시범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힘 빼는 모습을 보여주기엔 모호한 구석이 있다. 지금은 그나마 초급일 때보다 힘을 뺀다고 빼는데, 아직도 힘이 들어가 팔 동작도 부드럽지 못하고 몸 여기저기 수리를 해야 하는 원인이 되곤 한다.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고 이후로 오랫동안 수면에 스트림라인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에 빠지는 위험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영을 배우는데, 물에만 들어가면 힘을 잔뜩 줘서 더 빠지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 힘을 줄수록 다리는 내려가고 저항은 있는 대로 다 받아서, 팔을 돌리고 다리를 차는데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이상한 형국. 그렇게 몇 달을 허우적대다가 머리가 내려가고 발이 올라가 제법 유선형 자세에 가까워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수면에 가까운 스트림라인을 유지하면서 수영해도 호흡할 때 머리에 힘주어 많이 들거나, 팔에 힘주어 스트로크 하면 문제가 됐다. 얼마 가지 않아 지쳤다. 초반에 힘을 많이 준 탓이다. 속도가 더딘 것도 당연했다.          


      

   “선생님, 저는 왜 물 위에 올라오는 팔 동작이 뻣뻣할까요?” “힘을 빼세요.” “선생님, 저는 왜 왼쪽 팔이 빨리 떨어질까요?” “머리에 힘을 빼고 옆으로만 돌리세요.” “선생님, 저는 왜 발차기가 안 나갈까요?” “발에 힘을 빼고 물을 누른다는 느낌으로 차세요.” “선생님, 저는 왜 25m만 가도 지칠까요?” “몸에 힘을 빼세요.” 수많은 질문의 답은 힘을 빼라는 간단한 조언에 닿아있었다. 하지만 마치 고승의 선문답처럼, 이 간단한 조언은 알 듯하면서도 도저히 헤아려지지 않았다. 힘을 빼고 물 위에 엎드려있는 것 같긴 한데, 팔도 발도 힘을 빼고 도대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라는 건지, 그리고 힘을 빼면 더 빨리 더 멀리 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조언을 들을 때마다 동자승처럼 야속한 마음만 일었다.               


 

   그렇게 깨달음이 지연된 채, 강습과 개인 레슨이 수십 차례 지나갔다. 그러면서 파악된 힘 빼기는 물을 밀 때만 짧게 힘주고, 그 외에는 힘을 빼라는 것이었다. 자유형에서 팔 동작은 엔트리, 캐치, 풀, 푸시, 피니쉬로 나뉘는데, 엔트리로 물에 들어가서 캐치에서 물을 잡고 풀에서 물을 당긴 다음 푸시에서 물을 밀고 피니쉬에서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에서 힘을 줘야 하는 구간은 푸시에서만 일어나야 한다. 즉, 전반적으로 힘을 빼고, 물을 밀 때만 잠깐 힘을 주라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렇게 상세한 구분과 설명을 들어도 몸에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더욱이 풀과 푸시의 구간이 어느 정도인지도 가늠이 되지 않고, 밀 때 힘을 주라는 것도 얼마 큼의 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즉, 나는 여전히 ‘힘을 빼라’는 조언에 감을 못 잡고 헤매고 있다. 나아지는 지점은, 조금씩 이해가 될수록 타인의 수영 모습에서 구분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어떤 이의 동작이 힘을 빼고 하는지, 어떤 이의 동작이 힘을 주고 하는지 금방 알아챘다. 힘을 빼고 수영하는 모습은 하나같이 부드럽고 여유 있고 우아해 보였다. 끊임없이 좌절하면서도 수영을 놓지 않게 하는 자극이 되었다. 힘‘만’ 빼면 저렇게 부드럽게 미끄러지듯이 쭈욱 쭉 나가는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힘‘만’이라고 쉬이 말할 수 없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아버렸기에. 오늘도 내일도 그 어려운 일을 해보려 애를 쓴다. 애쓴다는 말도 걸맞지 않은 말이다. 굳이 힘을 줘 노력한다는 말처럼 들리니.       


         

   살다 보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과유불급처럼 의욕이 강하고 마음이 급해서 잔뜩 힘을 주다가 오히려 전진하지 못하고 좌절의 늪에 빠져버리는 사례들.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하다 보면 어느새 목표지점에 도달하거나 뜻하지 않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텐데, 힘을 빼는 건 극히 힘들다, 아니 제일 힘들다. 늘 욕심과 욕망에 붙들려 잔뜩 힘을 주고 원하는 걸 얻으려, 온몸을 부리부리하게 만든다.    


             

   오늘도 자유 수영을 가서 오른팔 왼팔이 우아하게 올라갔다 내려가며 백조처럼 수영장을 노니는 여느 회원님의 모습을 목도했다. 보는 이도 편안해지는 자연스러움. 저렇게 힘을 빼면 내 삶이 얼마나 평화로울까,라는 생각도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수영하는 내내 커다란 과제가 될 것이다. 힘을 뺀다는 것. 언제 내 몸이 수면을 따라 부드럽게 나아갈지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빠질 것을 기대한다. 더불어 내 삶에서도 잔뜩 들어간 힘들이 조금씩 빠져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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