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문난 이작가 Oct 08. 2024

끝이 보이지 않는 교정

수영에세이 아홉 번째 이야기–끝은 없다, 끝을 향해 가는 과정만 있을 뿐


    수영을 시작했을 때는 강습 외에 교정하기 위해 따로 레슨을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개인 레슨은 강습에 시간을 맞추지 못하거나, 다소 여유 자금이 있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받는 수업의 형태라 여겼었다. 그런 내가 개인 레슨 트랙에 올라탄 지 7개월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내릴 지점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내리는 날이 올지 예측조차 되지 않는다. 

 


    처음엔 강사님이 개인레슨을 통해 약간의 교정만 거치면 자세가 아주 좋아질 것 같다는 훈수에서 시작했다. 수영이 한참 재미있어지는 시기에, 그 훈수는 3개월 정도 교정만 거치면 4가지 영법 자세가 드라마틱하게 변화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드라마틱’은 둘째치고 거의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한 채, 갈무리 됐다. 3개월이 끝나는 시점에 해외여행을 가게 되어 자연스럽게 쉬다가 다시 등록을 안 하면서 접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내렸던 트랙에 다시 자발적으로 올라타게 되었는데, 강습 회원들과 갈수록 벌어지는 실력 차와 느닷없이 시작된 왼쪽 어깨 통증으로 자세 교정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두 번째 개인 레슨에도 난 여전히 큰 기대를 했다. 이번에는 내가 스스로 부족한 점을 깨달아서 시작한 것이고, 자유형의 기초부터 교정하기에 기본을 제대로 쌓는다는 변별점이 있다고 둘러대며. 그러나 3개월 내내 호흡을 고치고 팔 동작을 고치고 롤링드릴을 하고 발차기를 연습한 후, 강사님으로부터 “이제 비로소 교정을 시작할 수 있는 자세가 만들어졌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동안 난 뭘 한 것인가?’ 충격이 일었다. 이제야 비로소 교정을 위한 출발선에 섰다니. 내 예상으론 이제 더는 교정할 게 없으니 하산하라는 말을 들을 시기였는데 말이다. 순간, 교정의 끝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내가 가진 습성을 고치려고 애쓰는데도 이만큼 걸렸구나. 그마저도 완벽하게 고쳐졌다고 볼 수 없는데도 이만큼. 

 


    수영을 꽤 오래 하고 잘하는 친구에게 이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7년을 매일같이 수영한 그 친구도 여전히 개인 레슨을 받고 있다 했다. 7년을 수영해도 교정이 필요하다며, 영법 자세에서 섬세함의 차이가 끝도 없다 했다. 순간, 그간 있었던 모든 일이 이해됐다. 내 기대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도, 이제 비로소 교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도. 난 겨우 두세 번 넘어지면 금방 자전거를 잘 타게 될 줄 알았던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자유롭게 자전거를 탈 수 있을 때까지 수백 번 넘어질 각오를 했어야 했는데. 수영을 지나치게 얕잡아봤다. 하긴, 그렇게 수영이 쉬운 것이었으면 수영선수들이 인생을 걸고 하루에 몇 시간씩 수년을 연습에 몰두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 수영선수들조차도 하나같이 자신의 자세가 정답이 아니라고들 하고, 끊임없이 교정하며 나아간다고 하는데, 나 같은 햇병아리가 겨우 3, 4개월 레슨으로 크나큰 변화를 꿈꿨다니, 정말 몰라도 한참 몰랐던 것이다. 

 


    끝이 없는 게 비단 수영뿐이랴. 둘러보면 모든 일이 그러하지 않은가. 다른 운동뿐 아니라, 숱한 영역이 모두 완벽이라는 고지에 닿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일 뿐, 완벽을 이룬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모두 ‘부단한’ 과정 어딘가에 있을 뿐.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매일매일 하염없이 방망이를 깎으면서.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출발점에서 고지로 이동해 가는 것 아닌가. 내가 하는 ‘글쓰기’ 작업만 대입해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는데. 매일매일 조금씩 쓰고 수정하고 다듬어가면서도 늘 어렵게 느껴지고, 내 글쓰기 능력이 얼마큼 나아졌는지 가늠이 안 되고, 고지에 가까워졌다는 판단으로 공연을 하고 출간을 해도 늘 남는 건 부족함에 대한 아쉬움뿐이었는데. 

 


    이제는 개인 레슨이 길어져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강습 외에 따로 레슨을 받는데도 실력이 빠르게 나아지지 않는다고 자책하지도 않는다. 교정의 트랙에서 내릴 날을 고대하지도 않는다. 과한 기대는 교만에서 비롯되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체력도 그리 좋지 못한 이가 몇 달의 레슨으로 수영을 마스터하려고 했다니, 충분히 어리석었다. 교정을 거치면 수영 영법 자세가 완벽해질 거라는 계산도 수영 물정을 전혀 몰랐던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세상 이치와 꼭 닮아있는 수영 세계에서 오늘도 또다시 겸허해진다. 이제는 큰 욕심 없이 매일매일 물을 젓다 보면 어제보다는 조금씩 나아질 나에 만족하기로 했다. 교정은 끝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니, 마음도 편안해진다. 

이전 08화 도대체 힘은 어떻게 빼는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