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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난 이작가 Oct 22. 2024

역세권보다 수세권

수영에세이 열한 번째 이야기 – 수영장 가까운 곳에 사는 건 럭키비키!


    내가 다니는 수영장은 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가깝다면 가까운 곳이고, 멀다면 먼 곳이다. 15분은 새벽 5시경 교통의 원활함으로만 가능하다. 만약 출근 시간이나 퇴근 시간이라면 배의 배가 걸릴 교통량을 보이는 곳이기에. 또한, 반드시 자가용으로만 가능하다. 새벽 5시는 대중교통수단이 시작되기에도 이른 시간이고, 도보로 간다면 족히 40분은 걸린다. 난 늘 눈뜨자마자 수영가방을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간 후 자가용을 이용해 20분 이내에 수영장 주차장에 도착한다. 하여, 거리에 대해 딱히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자가용’이 있을 때 이야기다. 

 


    얼마 전, 새벽 수영을 마치고 바로 출근하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배송 트럭과의 접촉사고였다. 배송 차량이 무리하게 내 차를 앞질러 가려다 사고가 났지만, 트럭은 멀쩡한 데 반해, 내 차의 오른쪽 범퍼는 보기 좋게 구겨져 말아 올라갔고 우측 하향등은 박살 났다. 견인차가 내 차를 끌고 갔고, 난 출근 가방에 수영가방에 오리발에 스노클까지 든 채로 8차선에 덩그러니 던져졌다. 여행 룩인지 출근 룩인지 모를 보부상의 모습으로 택시를 잡으러 용쓰다 포기하고, 겨우겨우 버스를 두어 번 갈아타고 출근했다. 어수선한 아침을 보낸 후, 오후가 되어서야 정비소 직원으로부터 수리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차 수리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열흘에서 이주 정도를 예상한다고. 출근이야 마을버스와 지하철로 충분히 가능하지만, 수영은 어쩐담.

 


    자가용이 없는 첫 이틀은 과감히 수영을 접었다. 하지만 셋째 날이 되자 수영이 몹시 가고 싶어졌다. 이 욕망으로 수난의 새벽을 맞이했다. 제시간에 맞춰가야 한다는 생각에 새벽 4시 40분에 기상하여 버스 정류장에 나갔는데, 양방향 모두 버스가 없었다. 택시는 말할 것도 없고. 할 수 없이 두 정거장을 내려가 다른 방향에서 오는 버스를 알아봤지만 그곳도 반대편 방향에서 첫 버스가 있어 돌아오려면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지하철역이 있는 큰 대로변까지 내려가서야 수영장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미 35분 정도를 걸은 후였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스포츠센터까지 10여 분을 더 걸어갔다. 등이 다 젖고 5000보 이상 걷기 운동으로 다리가 후들거린 상태에서 문에 이르니, 여유 있게 걸어오는 수친들과 줄지어 들어가는 자가용을 볼 수 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얼굴들은 내 새벽의 수난을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반갑게 인사했다. 겨우 수영장에 들어가기 위해 샤워를 했는데, 그냥 집에 돌아가도 충분히 운동이 된 듯한 고단함. 수영을 접으면 접었지, 다시는 버스를 타고 새벽 수영을 가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이 사건이 있고 나서야 수영장이 근거리가 아니라는 자각이 일었다. 수영장은 모름지기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 하여, 더 가까운 수영장을 물색해 보다 시립청소년센터 수영장을 발견했지만, 몇 번 광클릭에 도전해도 등록은 저 세상 이야기였다. 결국, 일주일 지나 예상보다 일찍 수리된 차를 돌려받고, 기존에 다니던 수영장에 복귀했다. 지금은 자가용이 있다는 것에, 자가용으로 15분 정도 달려 수영장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에 무한 감사를 하며 수영장을 다닌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겪고 나니 새벽 운전에 대한 부담감이 혹부리 영감 혹처럼 들러붙었다.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수영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올해 전세 기간이 만료되어 이사를 할까 말까 고민할 때, 제일 먼저 고려한 사항이 수영장과의 거리였다. 수영장을 다니기 전에는 보통 교통이나 인프라, 직장과의 거리 등이었는데, 어느새 수영장이 내 삶의 둥지를 정하는데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장소 이동에서 소비되는 시간을 무척 아까워하는 나로서는 생활 반경이 가깝게 형성되는 걸 선호한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부동산이 치솟고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스무 평 삼십 평 공간이 수십억을 호가하면서 살고 싶은 곳에서 점점 밀려났다. 더욱이 경제 무뇌아인 난, 영끌해서 집을 산다거나 몸 테크로 투자를 한다는 개념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다. 그저 쾌적한 전세로 자주 이사 다니지 않아도 될 만큼만 살아도 족했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 현실적으로 주거지를 선택하는데 제약이 생기면서, 내가 신자본주의 부적응자임을 자연스럽게 시인하게 되었다. 

 


    어쩌랴. 돈이 많아 수영장도 가깝고 지하철역도 가깝고 인프라도 잘 형성된 곳에 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을. 그래도 지금 수리된 자가용이 있고, 자가용으로 15분 정도 가면 수영장 있는 곳에 살고 있고, 매일 아침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세상은 감사하는 자의 것이므로, 교통사고로 인해 더욱 내 상황에 감사하게 됐음에 감사하면서 내가 가진 것을 돌아보고 감사할 줄 아는 게 최선이라 생각한다. 이제 와 투자에 밝지 못한 나를 타박하지 않고, 그저 좋아하는 일 즐기면서 살았노라 반추하면서, 비록 역세권이나 수세권이 아니더라도 그 언저리 어디메쯤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자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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