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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난 이작가 Oct 29. 2024

나만 부지런한 게 아니었어

수영에세이 열두 번째이야기 – 딱히 억울할 게 없는 인생

    

    6시 수영에 참여하려면 적어도 5시 1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자마자 나간다 해도 화장실도 들러야 하고, 옷도 잠옷에서 외출복으로 바꿔 입어야 하고, 수영 후 먹을만한 아침도 챙겨야 하니 적어도 10분 이내가 소요되고,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를 몰아 스포츠센터 주차장까지, 주차장에서 수영장까지 도착하는 데에도 20여 분이 소요된다. 또한, 요가나 헬스와는 다르게 운동하기 전 머리를 감고 샤워를 마친 후 수영복 수모 수경을 써야 하니, 이런 준비에도 20분 정도가 걸린다. 즉, 6시 수영을 다니려면 매일 새벽에 벌떡벌떡 잘 일어나야 스텝이 꼬이지 않는다. 

 


    다행히도 나름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장착되어 있어 지금까지 거의 빠지지 않는 출석을 자랑하고 있다. 고비는 없었다. 처음 등록할 때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간혹 알람 맞추는 걸 잊어도 이젠 5시 언저리에 눈이 떠진다. 놀랍게도 몸이 수영 시간을 아는 것이다. 이런 나 자신이 한없이 기특하다. 그런데 새벽 수영을 다니면 이 부지런함이 전혀 특별한 일이 되지 않는다. 모두 그러하니. 

 


    새벽 수영을 다니면서 새벽에 하루를 여는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수영장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회원의 출석률이 상당히 높고, 심지어는 그 시간에 헬스장에 오는 회원들도 갈 때마다 만난다. 더욱이 수영 강사님들도 꽤 먼 거리에서 지하철과 자전거, 승용차 등을 이용하여 지각 결석 없이 도착한다. 집에서 수영장까지의 짧은 거리에도 불구하고 이른 시간부터 폐휴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두세 번씩 마주칠 뿐만 아니라 교회마다 새벽 기도하러 들어가는 사람들, 거리 청소하시는 분들, 지하철 입구로 들어가는 사람들로 꽤 분주한 새벽의 풍경을 훑어보게 된다. 수영이 끝나고 나오면, 갓 아침 7시를 넘긴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모든 이들이 하루를 시작한 지 꽤 된 듯한 모습으로 그득그득하다. 거리는 러시아워로 양방향이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숱한 무리가 진공청소기처럼 지하철로 흡수되고, 터지기 직전 김밥 같은 버스가 즐비하게 달린다. 일찍 직장에 도착해도 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바닥 청소하시는 분, 화장실 청소하시는 분, 급식을 위해 식자재 나르시는 분, 우유 배달하시는 분, 화단과 텃밭 정리하시는 분, 교통 통제하시는 분들로 건물이 깨어나고 있다. 

 


    새벽 수영을 다니기 전에는 출근 준비 시간에 맞춰 일어났고, 직장에 도착하기 위해 여느 사람들과 비슷하게 움직였기에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사람들을 목도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무리에 참전하면서 내가 미처 몰랐던 또 다른 세상을 구경하고 있다. 그러면서 안타깝게도 나 스스로 자부했던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그닥 특별한 것이 아니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한동안 인생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왜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지, 왜 운이 없는지 억울해하고 야속해하곤 했다. 이제야 그 의문에 납득할 만한 단서를 잡았다. 세상엔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 넘쳐나고 있었다. 내 예상보다 더 많이. 따라서 내가 기대보다 더 잘 풀리지 않는다고 신세 한탄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비록 국제 정세를 논하거나 세계 기아를 위해 노력하거나 나라 경제를 움직이는 큰 일을 하지 않더라도, 비록 눈에 잘 띄지 않는 작고 소박한 일이라 하더라도, 모두 열심에 열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나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더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음에 억울해하고 서운해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그저 그 정도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있었으니, 평타를 치고 지금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 이것을 깨닫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새벽 수영이 내 일상 일부로 성큼 들어오면서,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평범한 특징이었음을 알아가면서, 그간 내가 일군 것들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나의 열심이 지금의 나를 가능케 했고,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됐음을 인정해 주게 되었다. 하여, 더 뻗어 나가지 못한 내 삶의 결과들을 타박하지 않기로 한다. 지나친 기대나 쓸데없는 억울함을 토로하지 않기로. 그저 늘 하던 대로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굴비처럼 엮다 보면,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는 단단함으로 툭 떨어지는 일 없이 잘 버텨낼 것을 신뢰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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