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에세이 열세 번째 이야기 – 다 가질 순 없다!
분명 눈 밑 꺼짐은 수경 탓이리라. 일주일에 6일 수경을 쓰니, 수경 패킹의 압박이 점점 판다 라인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준다. 낙숫물이 댓돌 뚫듯이 언젠가는 수경을 안 써도 마치 수경 쓴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싶은 우려까지 인다. 며칠 전에는 이 우려가 우려에 그치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듯,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눈 밑이 꺼져 나이 들어 보인다며 지방 재배치를 권했다. 본인 배우자도 했는데 만족도가 꽤 높다며 수술도 간단하고 예후도 좋다고. 그 말에 혹해 관심에도 없던 지방 재배치에 대해 하루가 멀다고 검색하게 되었다. 친구 말처럼 그리 대단한 수술도 아니었고, 요즘은 꽤 흔해진 수술이라 한 번쯤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크게 걸리는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수영’이다. 수영 때문에 사태가 벌어졌는데, 수영 때문에 수습하지 못하는 아이러니.
수술을 하게 되면 수영을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쉬어야 하고, 이후 수영을 하더라도 다시 수경을 착용하면 눈 밑이 또 꺼질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지방 재배치를 해도 수영을 하면 똑같은 일이 벌어지니, 아예 수영을 그만두거나 아예 수술할 생각을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벌써 문제점은 강인하게 인식되어 거울만 보면 해먹처럼 늘어진 눈 밑 자국만 보이는데.
사실 이런 고민이 들어오기 전엔, 더 잘 압착되는 수경을 찾아 헤맸다. 스타트할 때 벗겨지지 않는 것이, 수경의 가장 큰 미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결국 꽤 고가의 수경에 안착했고, 고가 브랜드를 색깔별로 종류별로 사들였다. 이걸 써도 저걸 써도 압착력이 좋아 천 원에 새겨진 퇴계 이황의 모습으로 진화시켜 놓는 데는 손색이 없었다. 이것이 미덕이 아니라 주름과 노화와 노안의 원흉이 되리란 예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여전히 고민 중이다. 수영 중독을 끊지 못해 수술을 무한정 미뤄두고,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며 한숨짓는다. 언제까지 유예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나마 한숨이라도 덜지 싶어 고글처럼 큰 수경을 구입했다. 수영장에서 스노클링 할 일도 없는데, 요즘은 얼굴의 반은 가릴만한 수경을 쓴다. 눈 밑을 커버하고도 남을 만큼 큰. 이미 눈 밑을 푸우우욱 꺼뜨려 놓고 이제 와 VR 할 때나 쓸법한 수경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고민을 이고 수영장 가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워지기에.
인생은 항상 이랬다. 다 가질 수 없다.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쉬이 포기를 못 해 결단은 늘 늦어지고. 손가락을 접어가며 기회비용을 따지다 둘 다 놓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여, 현명한 길은 과감하게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은 것은 뒤돌아보지 않으며, 오로지 선택한 것에 만족하고 책임지면서 쭉쭉 나아가야 한다는 것. 이렇게 내가 취해야 할 태도를 명확히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갈팡질팡이다. 세상에 있는 거울을 다 없애버리면 고민이 덜해질까?
한동안 수영 실력이 나아지지 않아 길고 긴 수태기 터널을 견뎌야 했고, 어깨 통증으로 수영을 쉬게 될까 봐 별별 치료로 연명해 왔는데, 이젠 눈 밑 꺼짐이라는 또 다른 방지턱에 걸려버렸다. 어찌 보면, 수영을 계속해나가는 것은 숱한 기회비용을 치러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현재 스코어로 난 여전히 수영을 선택했다. 마치 수영의 호위무사처럼 수영봇짐을 끌어안고 숱한 난관을 물리치며 새벽바람을 가르는 형국이다.
앞으로 더 늙을 일만 있고, 눈 밑은 더 꺼질 일만 남았다. 지방 재배치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말이다. 그래도 지금 수영을 잠시 쉬거나 그만두면 17년 전에 그러했듯, 다시 돌아오는 게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앞선다. 할 수 없다. 잠수경만한 수경을 두어 개 더 장만해서 눈 밑을 압박하지 않다는 안도감으로 나를 속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