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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난 이작가 Sep 18. 2024

수영, 가성비 떨어지는 운동

수영에세이 여섯 번째 이야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일

     오랫동안 수영한 사람들은 흔히들 이만큼 가성비 좋은 운동이 없다고들 한다. 더욱이 근거리에 있는 공립체육센터 수영장을 다니는 이들은 가성비만 따진다면 만족도가 더 높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사설 수영장을 다녀 공립보다 강습비가 높은 것은 차치하고, 수영 실력 부족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개인레슨을 받고 있어, 매달 강습비에 레슨비가 얹힌다. 물론, 수영복, 수경, 수모 구입이 잦은 것도 수영 관련 소비에서 무시 못하는 영역이긴 하나, 이외에 정형외과 치료비가 꾸준히 들어가고 있다.   


             

    수영 자세가 좋지 않아서인지 무리를 해서 인지 정확지는 않으나 언제부터인가 왼쪽 어깨에 통증이 생겼다. 한의원에서 침을 몇 번 맞았지만 낫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정형외과에 가서 X-RAY와 초음파 검사를 했다. 어깨에 염증이 생겼다 하여 물리치료를 몇 번 받았는데, 그래도 신통치 않자 체외충격파 치료를 권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받으라는 충격파 치료는 보험이 되지 않아 물리치료의 7배가량 비싸다. 만약 병원에서 권한만큼 충격파 치료를 받는다면, 매달 어깨치료비로 레슨비의 두 배를 지불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체외 충격파 치료는 한 달에 두세 번만 받고 있다. 이러니 수영을 계속하려면 레슨을 안 받을 수도 없다. 어깨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교정을 받아야 하니 말이다.      


          

    하여, 내가 수영을 하려면 매달 강습비, 레슨비, 수영 장비, 치료비를 감당해야 한다. 달마다 지불하지 않는 애플워치, 수중 이어폰, (물 잡기 지상훈련에 용이한) 스트레치 코드, 숏핀, 롱핀, 스노클, 제모용품, 샤워용품 등까지 더하면 소비 총량의 삼분의 일은 수영에 쓴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몇 개의 수영복으로 강습비만 들여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내가 다소 특이한 케이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회전근개파열'이란 어깨 통증은 수영하는 사람들에서 많이 나타나는 대표적 질환이고, 강습 외에 레슨을 받는 이도 적지 않고, 인기브랜드 수영복은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광클릭을 해야 구입에 성공하니, 물옷을 사는데 관심이 많은 이도 꽤 있다고 본다. 나만 수영에 이렇게 소비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항변하기 위해 구시렁대는 군소리다.            


    행여 친구를 만나 이 가성비 떨어지는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하나같이 그만두라고 한다. 강습받고 보충지도받고 치료받는 메커니즘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하긴, 나도 이해받고자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우스갯소리처럼 흘리는 것이니, 이 상황을 온전히 납득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일단 돈을 지불하면 열심히 한다는 것. 강습도 레슨도 치료도 부지런히 받는다는 것. 그래서 수영을 아예 하지 않는 상황이 오기 전까진, 아마도 한동안 이와 비슷한 일상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렇게 가성비가 떨어지는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사실 차근차근 짚어보자면 온전히 '수영'이 갖는 매력과 수영을 함으로써 따라오는 '부수적인' 이점을 여러 개 들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미라클모닝에 새벽수영을 해내는 뿌듯함이라든가, 관절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하기에 좋은 운동이라든가,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운동 중의 하나라든가, 수면의 질을 높여준다든가, 등등. 그런 장점을 헤아리기 전에, 나는 무엇보다도 꾸준히 '스포츠'에 속하는 운동 하나를 배우고 있다는데 자긍심이 있다. 헬스나 요가나 필라테스를 할 때와는 또 다른 자긍심.                



    내가 국가대표 선수를 할 것도 아닌데, 늦은 나이에 수영을 배워서 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세상의 인정으로만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으랴. 어제보다 조금은 잘 나아가는 느낌에 뿌듯해하고, 잘은 못해도 4가지 영법으로 25m를 갈 줄 아는 것에 대견해하고, 각종 수영 대회를 보면서 흥분하고 훈수 둘 줄 알게 된 것이 마치 수영 세계에 입문한 것처럼 행복해지는 것을. 조기축구단이나 아마추어 야구단에 입단하는 것처럼 나는 '수영'이란 세계에 입성하여, '수영'이란 종목을 제대로 흉내 내보고 싶다는 야망을 품은 것이다. 그 누구도 선수는 아니지만, 누구는 공을 차고 누구는 방망이를 휘두르고 누구는 헤엄치면서 부지런히 잘해보려 애쓰고 있다.                



    실력도 더디 늘고, 가성비가 떨어져 푸념하는 날이 많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난 이 '수영인'으로의 자긍심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다. 내가 어느 스포츠 세계의 일원으로 자리를 유지한다는 건, 나에게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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