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는 들고 싶었던 동아리에 친구가 면접을 보고 합격하는 걸 구경만 했다. 부끄러웠다. 쉽사리 얼굴이 발개졌다. 분명히 국민학교 때는 손도 번쩍번쩍 들고, 발표도 잘하는 자신감 있는 아이였는데,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었다. 친구가 자기 남자친구를 소개해준다고 데리고 와도 뒤돌아 도망가기 바빴다. 복도에서 선생님들을 마주치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도 제대로 못하는 그런 아이였다. 오죽하면, 시험문제에 학생들 이름을 사용하곤 하던 선생님께서 낸 고등학교 국어 시험지 14번 보기 2번에는 "00(내 이름)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지며 도망갔습니다."가 쓰여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지나다 동네 아줌마를 만나도 부끄럽고, 학생들이 선생니임~~ 하면서 뛰어와도 부끄럽다. 아이 친구들을 만나도 부끄럽다. 당황스러운 감정이다.
AI에게 물어보니 자존감의 문제인 것 같다고 말한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본다. 나의 자존감이 무너졌을 만한 때를. 가장 처음 떠오르는 기억은, 국민학교 4학년 때 우리 집에 화분을 옮겨다 주러 자진해서 왔던 남학생과 여학생이다. 당시 산동네에 위치했던 우리 집에 낑낑대고 올라가며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는지 묻던 그 친구들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말했다. "에게, 이게 너네 집이야?" 그리고 다음날 들려오는 소문은 "00이,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산다"였다. 나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그 아이들 이름과 얼굴만 정확히 기억이 날 뿐이다. 우리 집에 대한 부끄러움보다는 그 아이들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던 것 같다. "뭐 저런 애들이 다 있지? 남의 집더러 쓰러져가는 초가집이라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름이 '미녀'였던 그 여자아이가가 '마녀'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파트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잘 사는 집을 구경 한번 못했었다. 같은 동네 친구들 집들이 고만고만했고, 우린 그저 노느라 행복했으니 그 일로 울었거나 속상해한 기억이 없는데 왜 자존감 하면 그 친구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상처를 받았더라도, 어쩌면 담임 선생님 덕분에 치유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걱정해 주고, 진심으로 아껴주었던 담임선생님의 인자한 얼굴과 목소리가 세월이 흐를수록 선명하다. 진심 어린 말투와 표정은 멋모르던 아이에게도 평생 따뜻하게 기억된다.
다음 장면은 2년 후로 넘어간다. 6학년이 시작될 무렵, 동네 친구 중 한 명과 같은 반이 되었다는 소식에 뛸 듯이 기뻤지만, 그 한해의 기억은 평생 안줏거리가 될 만큼 지독하다. 그 친구와 같은 반이 되지 않았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드니 말이다. 같이 떡볶이를 먹으러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다가 갑자기 "너랑 절교야"하며 뒤돌아 가는 일은 셀 수 없었고, 앉고 싶은 짝이랑 앉는 날이나, 소풍 가는 날 옆자리에 같이 앉자며 약속해 놓고 당일 가면 다른 아이와 앉아있어 당황스럽게 했던 것도 수차례였다. 그 밖에도 여러 일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잊지 못할 기억은 선생님께서 익명으로 걷은 쪽지에 "선생님은 차별대우가 심함, 부자인 아이, 예쁜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만 좋아함"이라고 쓰고는 마지막에 "00 이가 한 말"이라고 내 이름을 덧붙인 것이다. 선생님이 잔뜩 화가 나셨다며 나를 부르던 아이의 얼굴이 생생하다. 다행히 선생님께서 내 말을 믿어주셔서 친구가 오히려 불려 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에 대해 혼났다고 했다. 그것이 분했던 친구는 하교 후에 나에게 남으라고 했다. 운동장 앞 스탠드에 나를 앉히고 거느리고 다니던 여자아이들 무리에서 가장 입이 걸걸한 아이를 내세워 거침없는 말을 퍼붓는 동안 뒤에서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던 남자아이는 바로 옆에서 그런 나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없었는데 그 남자아이는 어떻게 알고 혼자 온 건지 신기했다. 그저 어리둥절했다. 나에게 과격한 말을 퍼붓던 아이의 입이 무척이나 컸고, 목소리는 천둥같이 울렸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내 이름을 덧붙여 쪽지에 써놓고 저렇게 화가 난 건지도, 본인이 직접 얘기 안 하고 다른 아이를 내세우는 건지도, 잘 보이고 싶던 남자아이에게 왜 그런 모습을 보이게 하는지도, 담임은 왜 그런 쪽지를 사춘기 아이들 전부에게 쓰라하고는 불러내 길길이 뛰는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일 년간의 괴로움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참아내고 그 이후로도 4년을 더 친구로 지냈는데, 결국 그 친구는 고등학교에서 다른 동네친구들에게도 같은 반이 되었을 때 비슷한 행동을 하여 모두가 치를 떨고 헤어지게 됐다. 6학년 2학기에 반장이 전학을 가게 돼 투표를 다시 했는데, 떠나기 전 반장이 나를 불러 귓속말로 "나는 너 뽑았다"라고 말해준 것이 세월이 흐르고 보니 빨간약이 되어준 것 같다.
어떤 누가 심하게 굴어도, 이상하지만 그 당시는 그러려니 할 수 있었던 건, 이상한 걸로는 어느 누구와 맞짱을 붙어도 일등 할 것 같은 우리 아빠 덕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빠 덕분에 견고한 마음의 근력을 이미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 어떡해야 하나 모를 일이다. 생각해 보면 내 낮은 자존감의 바탕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어떻게 문제가 된 건지는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