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쇼츠를 둘러보다 밝고 건강한 이미지를 가진 가수가 나오는 영상을 보았다. 그녀는 요즘 예능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그리고 다양한 예능에서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다. 물론 좋은 노래를 들려주는 훌륭한 가수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그녀는 부러울 것 없이 아주 잘 나가는 연예인처럼 보였다. 그런 그녀가 영상에서 눈물을 머금고 슬픈 얼굴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상대방의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왜?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젊고, 건강하며, 그녀가 벌어들이는 돈도 충분해 보였다. 왜, 무엇이, 그녀를 두렵고 힘들게 하는 것일까. 어떤 생각이 그녀 얼굴에서 웃음을 잃게 만들었던 걸까.
내가 뭐라고. 그녀보다 훨씬 늙었고, 갖가지 병을 달고 있으며 허리조차 굽혔다 펴기 힘든 내가, 그녀가 걱정이 되었다. 노후가 걱정되어 충동적으로 주식에 돈을 몰빵 했더니 당장 낼 아이 학원비조차 걱정인 내가 뭐라고 그녀가 자꾸 마음에 남았다. 그녀가 마치 곧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라고 할 것처럼 걱정이 되던 나는 그럼 나는 왜 사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의 엄마는 늘 그랬다.
너는 고생을 안 해봐서 나약해 빠졌어. 그까짓 게 뭐가 대수야? 으이그, 고생을 더 해봐야지.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의 힘듦이 힘듦이 아닌 건 아닌데 그렇게 말할 때마다 공감해주지 않는 엄마가 야속했다. 그렇지만 엄마의 인생에 비하면 나의 삶은 너무나 고급짐은 사실이었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엄마의 삶을 살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아마도 하루하루 그냥 버티어내며 살았을 테다. 고단한 삶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의 한 끼 밥과 수다를 낙으로 삼으며, 어떻게든 짬을 내어 운동을 해서 스러져가려던 힘을 더욱 쥐어짜 내며, 가슴이 아파도 포기할 건 포기하고, 내려놓을 건 내려놓고, 할 수 있는 건 있는 힘을 다해 얻어내며 악착같이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일테다. 작은 것들에 웃고, 힘든 것은 내려놓고, 어두운 면과, 밝은 면 중 밝은 면을 선택해 애써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왔을 테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와 결국 얻어낸 것은 무엇일까?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낸 것이 정말 그럴만한 보람이 있는 걸까?
삶이 훨씬 고통인 사람들도 다 살아간다. 살아가는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다들 그냥 살아간다. 얼마 전 티브이에서 80대 노인을 보았다. 아들은 식물인간으로 살아가고, 아들을 돌보던 부인은 치매판정을 받아 요양원에 있었다. 한 아버지이자 남편인 그는 하루하루 그들을 돌보며 살고 있었다. 책임감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고 있을 그보다 유튜브에서 잠깐 본 그녀가 훨씬 더 슬퍼 보였다.
나는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땅에 떨어졌으니 그냥 살아본다. 힘들어도 살아본다. 미션을 수행하듯 하나하나 고비를 넘으며 살아본다. 이왕이면 웃어본다. 슬픔은 빠르게 잊고 내 발밑의 좋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내가 가진 행복을 최대한 누려본다.
깜깜한 시골길을 걷게 된 어느 날이었다. 가로등도 없고, 주변에 인가도 없고, 암흑과 풀벌레소리만 존재하는 그곳을 나의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걸어야 했다. 그 길에 들어서기 전 아이는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기겁을 했다. 하지만, 핸드폰 불빛에 의지하여 발밑만 보고 걷던 우리는 우연히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감탄을 했다. 하늘이 천상인 듯 보랏빛 핑크빛을 내며 밝게 아름다웠고, 구름색과 별빛이 고왔다. 마치 하늘이 따뜻하게 감싸주는 어여쁜 그림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서움이 모두 사라졌다. 새로운 감동을 찾아 즐거운 마음으로 걷던 그날 그 길에서 엄마와 나누었던 대화가 별처럼 가슴에 박혔다.
“엄마, 엄마는 지금까지 계속 살아온 보람이 있어?”
“그럼, 지금까지 살았으니, 너 결혼하는 것도 보고, 손자들도 보고 하지.”
“에게, 겨우 그거야?”
“왜, 너 사는 게 재미없어?”
“아니, 그냥”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살어. 욕심부리면 사는 게 힘들어진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 많이 웃으면서 살아라. 나는 요즘 사는 게 너무 재미있다. 제일 행복해. 살다 보면 다 살아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