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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울과 철학 Jul 18. 2021

세계의 무너짐, 앤드류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




앤드류 솔로몬은 첫 소설을 성공적으로 발표하고, 어머니가 별세한 일도 충분히 잘 견뎌내었다고 생각하던 때에 중증 우울증이 발병하게 된다. 그는 그 후 여러 차례 우울증이 재발하는 과정에서  「한낮의 우울」을 집필하게 되는데,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우울증 병력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우울증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 예를 들어, 치료법, 자살, 역사, 정치 등에 대해 방대한 기술을 하고 있다.





중증 우울증은 붕괴의 원인이다. 중중 우울증은 전체 구조를 갑작스럽게 무너뜨린다.  붕괴가 아무리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해도 그것은 부식이 누적된 결과다.  결코 매우 극적이거나 부식의 누적과 별개인 사건이 아니다. 한 부분이 붕괴하면서 다른 부분에 충격을 주어 극적으로 부식의 균형을 깨는 것이다.

「한낮의 우울」(앤드류 솔로몬 저) 中



 우울증은 나를 둘러싼 세계의 무너짐이다. 나를 지탱하던 가치관, 열정, 행복의 순간들이 일거에 모두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말 그대로  '전락'하고 만다. 아무런 보호막도 없는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다. 회사에 가는 출근길이 고역이 되고,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텁텁 막힌다. 음식도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고,  위장에 무엇인가 들어가면 구토를 하기 일쑤이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힘이 들고, 집에 오면 침대에만 눕고 싶어 진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나를 둘러싼 세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성욕, 식욕이 사라짐은 말할 것도 없고, 지적 호기심, 예술에 대한 취미 등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던 일들도 모두 하기 싫은 일이 되고 만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강렬한 불안이 엄습하는데 이대로 일상생활을 해나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우울증 상태에서는 작은 일도 복잡하게 느껴진다. 간단한 일도 여러 단계로 구성되고 위험들로 뒤덮여 있는 느낌을 받는다. 어떠한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가능성들이 단순한 일을 수행하는 것을 힘들게 만든다. 비 우울증 상태라면 생각도 하지 않을 가능성들이 실재함을 알게 된다.



우울증 상태에서는 판단이 흐려진다는 말들을 하지만 우울증의 일부분은 인식과 닿아 있다. 우울증으로 인한 붕괴 상태라 해서 인생의 문제들이 꼬리를 감추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몇 년 동안 교묘히 회피해 온 문제들이 있다면 그것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당신을 정면으로 노려본다. 의사들은 당신의 판단력이 흐려져서 그런 것이라고 위로하지만 틀린 말이라는 걸 당신은 안다. 당신은 인생의 가혹함과 닿아 있다.

「한낮의 우울」(앤드류 솔로몬 저) 中



 우울증 상태에서도 세상사의 여러 가지 근심들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비 우울증 상태와 다른 점은 낙관주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사의 일들이 귀찮고. 버겁고,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고 느껴진다. 지금의 문제는 미래에도 계속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은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 준다. 그동안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로 쉽게 지나치던 일들이 새로운 위상을 가지고 내 사유 속에 자리 잡게 되며, 새로운 삶의 구조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던 것이다. 이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기쁜 곳도 아니다. 사방에 위험이 존재하고 슬픔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믿을 것은 무엇이고, 나는 어떠한 철학과 윤리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우울증을 안고도 얼마든지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다. 사실 자신의 우울증을 통해 배움을 얻는 사람들은 우울증 체험으로부터 특별한 도덕적 깊이를 얻을 수 있으며, 이것은 그들의 고통의 상자 밑바닥에 고이 놓여 있다.

「한낮의 우울」(앤드류 솔로몬 저) 中



우울증은 한 사람을 철학적 사유로 인도한다. 그는 고통의 절벽 앞에서 모든 것을 의심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신념체계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신념체계 안에는 당연히 윤리적인 철학도 들어가 있다. 새로 얻은 윤리성이야말로 그 사람의 도덕적 깊이를 배가하는 수단이 된다.


 우울증을 통해 깨달은 윤리성은 그것이 극한의 고통 속에서 얻게 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삶에 더 깊이 뿌리내린다. 중증 우울증을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러한 깨달음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우울증의 고통이 올지 모른다는 겸손한 생각은 실천을 게을리하지 않는 경각심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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