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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울과 철학 Oct 28. 2021

인과율과 무한에 대한 단상

인과율


세계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룰 때, 원인과 결과라는 개념을 항상 사용한다.

사건 A 가 발생하여 B가 발생했다 또는 사건 A로 인하여 B가 발생했다와 같은 경우이다.

가령, 남편의 죽음으로 인하여 부인이 우울증 발병했다는 명제를 보자.

남편이 죽은 이후에 부인에게 우울증이 왔다면 사람들은 위의 명제를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다. 즉, 부인의 우울증은 결과이고 그 원인은 남편의 죽음인 것이다. 부인의 우울증이 결과라는 것은 우리가 이미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문제로 삼을 것이 없다.

그러나 ‘우울증의 원인이 남편의 죽음이다’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론(異論)이 있을 수 있다.

남편의 죽음은 다양한 상황의 변화를 야기한다. 집안의 경제적인 면의 변화가 있을 수 있고, 가족들의 심리적 상황에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그 가족, 그 부인을 바라보는 시선, 염려 등도 발생할 수 있다. 그 부인의 우울증이 발병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 상황들이 남편의 죽음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인은 우울증에 취약한 유전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즉, 그녀의 우울증은 단지 시간의 문제였을 뿐 이미 내재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위와 같이, 부인의 우울증이라는 결과의 원인은 남편의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분리된 객관적인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상황들, 문맥들, 다른 내재적 요인들을 포함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남편의 죽음과는 전혀 무관한 요소로 보이는 사실 또한 이러한 ‘원인의 거대한 흐름’을 구성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이번에는 좀 더 물리학적인 설명이다.

‘파티클 A가 운동하여 파티클 B에 부딪혀 파티클 B가 움직였다’라는 상황에 대해 고려해 보자.

파티클 A의 운동과 충격은 원인이 되고, 파티클 B의 이동은 결과가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파티클 B의 이동은 파티클 A의 운동과 충격으로만 발생하는 것인가? 위 공간에는 과연 파티클 A, B만이 존재하는 곳인가? 대부분의 공간은 다양한 파티클 및 물질들을 포함하고 있다. 파티클 A의 운동은 이러한 주변 물질들의 운동과 움직임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주변 물질들의 운동과 움직임에 영향을 받고 있기도 하다.

충격 역시 마찬가지이다. 파티클 A가 움직임을 잃어갈 때 그 에너지는 파티클 B에만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파티클 B 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양한 물질들에 여분의 에너지가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들은 다시 파티클 B의 존재의 양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파티클 A와 전혀 관계가 없는 외부의 힘과 에너지가 충격의 순간에 파티클 B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위의 두 사례를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원인을 하나의 분리된 객관적인 사건으로 한정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이다. 원인은 오히려 유기적인 모습을 보이며 이들의 양태는 사건 또는 사실이라는 개념보다는 상황이라는 개념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원인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고, 연결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떠한 분리된 객관적 사건 또는 사실을 어떠한 결과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명제가 있다면 이는 앞에서 살펴본 이유로 무리한 단순화를 실시한 것이 된다.

위에서 살펴본 사정들은 우리를 어떠한 통찰로 안내할까? 과연 어떠한 사건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즉, 원인의 범위를 파악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면, 원인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유기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면 시간적인 선·후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시간적인 선·후 관계를 결정할 수 없다면, 만약 그렇다면 이는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는 것, 그리고 이들을 인과율에 따라 연결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인과율은 과연 무엇인가? 위의 통찰에 따르면 우리는 인과율의 존재 자체를 인정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떠한 사건도 그것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객관적이고 명징하게 지시할 수 없으며, 사건들의 시간적인 선·후 관계도 결정하기 어려운 요소, 어쩌면 결정 불가능한 요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원인과 결과라는 틀을 이성적 사유를 위한 필수적 요소로 도입할 필요는 없으며, 원인과 결과라는 개념은 오히려 심리적인 영향으로 발생한 허상의 개념일 수도 있는 것이다.

흄이 인과율의 허위성을 지적했을때 칸트의 대답은  인과율은 물자체에 있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이성의  틀속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이성으로 원인과 결과를 범주화시킬 수 없는 사례가 무수히 많다. 즉 물자체가 뿐만 아니라  우리 이성의 범주속에도 절대적인 인과율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러한  절대적인 인과율 속에서만  사물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인 것이다.



 무한


우연성, 즉, 어떠한 일이 랜덤 하게 일어나는 것은 무한이라는 개념을 내재하고 있다.

어떠한 수열이 불규칙적인지, 규칙적인지는 그 수열의 끝까지 가봐야 하는데 그 수열이 영원히 계속되는 수열이라면 규칙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 위해 무한히 수열을 따라가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떠한 사건들에 규칙성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이들을 반복하여 시행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 사건들이 불규칙적이다 즉, 우연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사건들을 무한히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한이란 무엇인가? 무한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인가? 무한은 실제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머릿속, 즉, 사고 체계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무한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즉,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영원한 시행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무한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서는 막연한 느낌만을 가지고 있을 뿐인 것이다. 무한은 알지 못함, 증명할 수 없음이라는 개념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진화를 통해서 무한이라는 개념을 현재 유한이라는 개념을 포착하듯이 포착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의 이성은 물건을 뜨는 뜰채와 비슷한 것이다. 뜰채가 촘촘할수록 그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이 적어지는데, 현재 인간의 뜰채는 무한이라는 개념을 뜨지 못하고 틈 사이로 빠져나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여 보자. 개미와 같은 하등 동물에게는 인간만큼 큰 수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이들이 숫자에 대한 감각을 느끼는 것은 이들의 생존과 관련된 상황이다. 장맛비속 개미들에게 흙덩어리가 끼얹어지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이들을 공격하는 흙덩어리가 한 개인지, 두 개인지, 세 개인지는 중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을 공격하는 흙덩어리가 10개 이상이라면 더 이상 숫자를 세는 것일 의미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10 이상의 수는 무한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무한을 무한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개미가 10 이상의 수를 무한으로 느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즉, 인간보다 더 상등의 동물에게는 인간이 무한이라고 느끼는 수가, 인간이 유한이라고 느끼는 수를 느끼듯이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이 더 진화하여 이성의 뜰채가 더 촘촘해지면 인간은 무한이라는 개념을 현재 유한이라는 개념을 포착하듯이 포착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진화의 개념에 있다. 진화에 방향성이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규칙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진화는 본질적으로 무작위 한 변화를 전제하고 있다. 생물이 진화하는데 방향성은 없는 것이다. 방향성이 없다면 동물이 가지고 있는 이성의 뜰채가 더 촘촘해지는 방향으로 변화하리라고 쉽게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인간이 진화하여 무한이라는 개념을 현재 유한이라는 개념을 포착하듯이 포착한다는 것도 허상의 것이 된다. 즉, 인간에게 무한은 영원히 알 수 없는 것, 증명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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