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빠져 본 사람은 알 것이지만, 우울증의 상태에서는 작은 일도 수행할지 수행하지 않을지 결정하기가 어렵다.
내가 우울증에 걸려 병가를 쓰고 있을 때 가장 결정하기 어려운 일은 언제 복귀를 할 것인가였다. 내가 언제 복귀하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2주 뒤에는 가능할까? 한달 뒤에는 가능할까? 그렇다면 회사에는 언제 복귀한다고 말해 놓아야 할까?
이러한 일들의 결정은 비우울증인 상태에서는 단순한 일이다. 그러나 우울증인 상태에서는 어려운 판단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우울증인 상태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인데, 그것은 어떠한 사건이나 상황의 발생이 각각 모두 가능성을, 그러니까 확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 일이 아무리 부정적이고 절망스러운 일이라도 발생할 가능성을 제로라고 할 수 없다.
건강한 상태에서는 가능성이 작은 일은 쉽게 논외로 여기게 된다. 즉,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가지 경우의 수를 쉽게 제거하게 되고 판단의 다음 단계로 쉽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비우울증인 상태에 있는 사람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본다. 그리고 이러한 낙관주의 속에는 수많은 논리적 오류가 숨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울증의 상태에서는 이러한 낙관주의는 사라지고 사실관계를 더 명확하게 보는 경향이 지배하게 된다. 어떠한 사건이 발생할 확률은 제로가 아니므로 그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되돌아 갈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결과적으로 선택의 불가능함을 인식하게 만든다. 우울증인 상태에서 강하게 인식하게 되는 것은 어떠한 선택이 전적으로 옳으므로 그 선택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소한 일에서부터 중요한 일에까지 어떠한 행위나 입장을 취할 것인지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면 삶을 영위해 나갈 수가 없다.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선택들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며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는다면 금방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항상 진실만을 보여주지는 않는 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