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래를 향해 걷는 것은 못합니다. 미래를 향해 좌절하는 것, 그것은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쓰러진 채로 있는 겁니다"
- 프란츠 카프가
하나의 고통이 끝난 줄 알았다. 끝난 것이 아니라도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착각이었다. 고통은 계속되고 있었고, 오히려 전보다 더 큰 강도로 나를 휘몰아치고 있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고통이 다시 다가올 때보다 더 절망스러울 때가 있을까?
나는 20대 중반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첫 번째 우울증을 겪었다. 모든 일에 자신만만하고 인간관계도 원만했던 나는 사이코패스 직장 상사를 만나면서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어지러움증이 심하고, 설사를 자주하여 귀에 이상이 생긴 줄 알았다. 그래서 한동안 이비인후과를 다니고, MRI를 찍으며 병원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이상이 있더라도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병이라고 했다. 나의 잠정적인 병명은 메니에르 증후군이었다. 증상은 있으나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병, 메니에르 증후군이 나의 첫 진단이었다. 하지만 직장생활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서적, 감정적으로 큰 폭풍을 겪으면서 내 병이 우울증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때서야 신경정신과를 찾아가 항우울제를 처방받게 되었다. 1년, 아니면 2년 정도를 우울증에 시달렸다. 중간에 복직도 했지만 나의 생활은 우울한 색채로 가득했다. 잠을 자는 시간이 많아졌다. 근무 중에도 꾸벅꾸벅 졸던 기억이 떠오른다.
결국 나는 자진해서 지방으로 파견 근무를 가게 되었고, 경주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우울증이 계속되었다. 나는 큰일이 아님에도 사무실에서 마주치는 일들에 걱정을 했고, 조바심에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근무 중에 휴게실에 내려가 몇 시간을 내리 잔적도 많았다.
하지만 업무에 적응이 되고,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어울리면서 나의 우울증은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르게 되고 업무 속에 파뭍이면서 우울증이 사라진 것이다. 나는 다시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고, 사람들과의 소통도 활발히 하게 되었다.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루하루가 신나고 즐거운 일의 연속이었다. 다소 지루한 시간이 오면 나는 철학적인 사색을 많이 했다. 명상도 하고, 책도 읽으며 충만한 느낌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살아보자 하는 마음은 있었다. 아니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서울에서의 생활을 접고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왔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처음에는 버겁게 느껴졌다. 업무는 진입장벽이 높았다. 그 진입장벽을 넘는데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후 몇 년간을 나는 가족들을 위해 살았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이렇게 적응을 하는구나 하고 착각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독한 우울증은 나를 떠난 것이 아니었다. 부서 이동이 있고 얼마 안 있어 눈을 자주 깜박이는 강박적인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릴 적에 강박증 때문에 고생한 적은 있어도, 이 정도로 마음을 쓰지는 않았었다. 나는 내 증상에 지나치리만큼 집착하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 깜박임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의사는 불안해서 그런 것이라고 했지만, 그 당시에는 별로 불안한 마음이 들만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지 않았다. 강박증으로 괴로워하던 시간의 끝은 우울증이었다. 어느 날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음식을 한 숟가락도 입에 넣을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구토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깨달았다. 우울증이 다시 온 것이라고.
고통은 계속되는 성질이 있다. 충분히 좌절했다고 여길 때, 충분히 절망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할 때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고통은 큰 사건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작은 사건들, 좌절들이 모여서 큰 강이 되어 흘러넘친다. 물론 그런 좌절들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나의 좌절이 어느 정도 극복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다른 좌절을 만날 줄이야... 요 며칠 좌절감 때문에 많이 울었다. 책상 앞에 무력하게 엎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 고통들의 끝은 어디일까? 앞으로 한 달, 석 달... 다시 희망을 찾는 순간이 오기는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