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하고 느슨한 백수의 시간을 조금은 단단하고 촘촘하게.
나는 요즘 백수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감각하는 즐거움이 한창이다. 빽빽하게 숨 가쁜 시공간 위를 잰걸음으로 걸었던 직장인으로서 도저히 가늠키 어려운 그런 즐거움을 말이다. 분명 헐렁하고 늘어진 다음에서야 감각하는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경험이다. 주말과 평일의 경계가 허물어진 어느 날, 한가하고 조용한 카페에 들렀다. 커피숍 통창이 담아내는 풍광을 보고 단숨에 넋을 잃는다. 도드라지는 봄의 선율을 담아내는 파란 하늘, 그 위로 쏟아지는 분홍잎 음표들, 청초롬한 연두색의 기운들이 이곳저곳 피어나 이내 코 앞으로 번져온다. 숨결에 닿은 초록색 기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폐 깊숙한 곳까지 흘러들고 부풀어 오른다. 그렇게 떠오르는 푸른 상상력을 한 아름 부여잡고 두둥실 떠오르면, 지면 위에 꼼짝 않던 두 다리를 자유롭게 굴려본다. 어느새 정수리가 보이는 높이만큼 두둥실 떠올라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잃지 않으려 두 팔을 휘젓는다. 지금껏 갇혀있던 '나'라는 밀랍의 형상이 탁 트인 시야에서 점점 녹아내린다. 그 좁디좁은 세계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시간을 지나면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던 드넓은 세상을 마주한다. 이것이 바로 백수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감각하는 즐거움일 테다.
춤추듯 두 팔과 다리를 휘젓고 생동하는 감각을 균형 있게 다지는 일은 비단 손에쥔 핸드폰을 내려놓고 책을 집어드는 일이기도 했다.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세계를 매력적으로 묘사하는 젊은 작가의 이야기가 중년의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 특히 나는 '이슬아작가'의 작품들을 즐겨 읽는다. 그가 빚은 여러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확장성'이라는 긴 실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 실로 말미암아 나에서 너에게로 이어지고 다시 사회로 확장되는 삶을 꿰어 내기를 소망하는 그의 열망은 백수인 내게도 참으로 백숙과 같이 고소한 영양분이다. 설렁하고 느슨한 백수의 시간을 조금은 단단하고 촘촘하게 직조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나'를 채우고 살아가다 더 이상 넘칠 수 없는 차원의 '나'의 한계를 깨닫고 '너'를 통해 다시금 비우는 시간을 걷고 있는 '이슬아작가'를 지체 없이 쫓아가는 요즘의 나다.
잠시 한쪽 눈을 감고 손가락 하나를 들어 고정한 채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반대눈을 감고 그 손가락을 유심히 살피면 아까와는 전혀 다른 위치에 와있다. 신기할 따름이다. 손가락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는데 여기서 저기로 단번에 이동한다. 관점의 이동은 위치와 시간의 좌표를 따라 계속해서 변해가며 움직인다. 그 물성의 메커니즘은 사실 꽤나 어린 시절에 배웠지만 그 이면의 이치와 의미를 깨닫는 것이 진정 신기할 따름이고 즐거움이다. 입체파 '피카소'와 '호크니'의 삐뚤빼뚤한 눈, 코, 입에 대해서 그 어떤 감흥조차 없었던 지난날과 다르게 이제는 그들의 위대함을 알아간다. 그들이 머물렀던 시선을 미미하게나마 좇을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이 참으로 즐겁다.
확장된 시공간으로 발을 뻗은 지 겨우 얼마 안 되는 시간일 테지만 어느새 일상으로 녹아든 새로운 시선들이 곳곳에 닿는다. 이를테면 또 이런 경험이다. 평일의 빽빽한 퇴근길, 직장인들 사이에 숨어든 백수는 그들과 같이 버스를 기다린다. 엿가락 보다 더, 더 늘어진 줄에는 퇴근의 설렘과 동시에 만석의 버스를 보내야 하는 무력해진 피곤함이 오밀조밀 섞여있었다. 오전의 파릇한 신선함이 기름진 눅눅함으로 번져 있는 그 성실했던 직장인들을 한 움큼씩 두어 번 버스로 실어내자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냉큼 자리에 제일 먼저 앉아 안도하며 내려다본 정류장. 버스가 서는 곳으로 긴 줄이 이리저리 몇 차례 움직이고 꼬이지만 모두들 질서를 웬만큼 지켜내며 버스에 오른다. 곧이어 작은 문으로 쏟아지는 승객 사이에 고성이 오간다. 왜 줄을 안 서고 타냐며, 버스기사는 왜 지정된 라인에 안 서고 엄한 사람먼저 태웠냐고 아우성이다. 긴 줄에 가려 저 너머의 앞사람의 기다림을 볼 수도 없으며, 버스가 서는 곳으로 긴 줄이 점점 이동하는 사실을 상상할 수도 없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분명 '나'라는 밀랍에 갇혀 빈곤한 상상력으로 분노했던 지난 과거의 안타까운 내 영혼들이었다.
소중한 시간을 빼앗긴 피해자처럼 씩씩대고 있을 가련한 내 영혼을 돌아보는 일이 백수의 소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오늘'을 감각하면서 보다 더 이해되는 '내일'을 고대한다. 그렇게 헐렁해진 시간 위의 감각들이 매일매일 뻗어나가 저만치 앞서있는 '이슬아작가', '입체파 거장'들의 실루엣을 놓치지 않기를 즐겁게 소망한다. 그리고 그 즐거움이 가볍게 휘발되지 않도록 백수는 오늘도 한 자 한 자 꾹꾹 타자를 눌러 열심히 끄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