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신발을 신고 쓸린 뒤꿈치의 아픔같은 것.
노란 옥수수 알갱이들이 전자레인지에서 하얗게 피어 팝콘 터져 나오듯, 올봄에도 뜨거워지는 볕이 닿는 곳 어디에도 하얗고 달콤한 연분홍 머금은 벚꽃이 터져 나온다. 봄의 온기가 바람에 실려 몸을 훑고 지나면 어느새 새끼손톱만한 하얀 꽃 잎들이 살랑거리며 내 눈을 어지럽히고 이내 바닥에 살포시 땅에 안긴다. 플라워 샤워를 다시 한번 맞보고 싶어 벚나무 높이만큼 고개를 치켜들어 한참을 올려다본다. 그러고 있노라면 문득 꽃들이 정말 팝콘을 닮아있어 먹음직스럽기도 했다. 어제와는 다른 미세먼지가 기승을 한 껏 부려 저 멀리 희뿌옇고 또 뿌연 세상이지만 노란색 개나리와 연분홍 진달래는 오늘도 눈부시게 짱짱했다.
몇 번을 마주쳤을 꽃들일 텐데 올해만큼 그들을 다시 만난 소회가 남다르다. 주머니 가벼운 백수로 맞이한 두 번째 봄이지만 처음과는 사뭇 다른 무거움 때문일 테다. 급여통장에 넘치던 숫자들이 종적을 감춘 지 까마득하고, 그 헐렁한 공간에서 너무 오래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초조함때문일까, 언제 봐도 이쁜 벚꽃이지만 어느새 져버릴 것을 미리 걱정하게 된다. 직장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봄날의 한 낮, 가볍게 처음 발을 내디뎠던 그때와는 분명 모든 것이 변해버린 것만 같다. 봄의 나날은 단지 똑같이 반복될 뿐이지만 말이다.
마음을 가볍게 하기 위해 내가 선호하는 것은 혼자 걷기이다. 기분 좋아지는 꽃들이 향연이 금방 끝날지도 모른다는 걱정 속에서 걷다가 문득 뒤꿈치 언저리에서 통증이 밀려옴을 느낀다. 계속 신고 다니던 신발일 텐데 새신을 신은 것처럼 어딘가에 살이 쓸려 느껴지는 이상한 아픔 같았다. 직장을 떠나 백수의 루틴이 돼버린 하루 '만보걷기' 가 이런저런 이유로 잠시 중단이 되었기 때문일까, 내 살들이 그새 말랑말랑 보들보들해진 탓일까, 불편해진 걸음걸이를 하면서도 나는 아픔을 애써 무시한 채 계속 나아갔다.
지난주 만족스러웠던 면접의 결과는 예상과 다르게 담백한 어조의 문자메시지로 '불합격'을 알려왔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약속된 시간보다 하루 빠르게 날아온 그 소식에 뒤꿈치의 아픔이 더 아렸는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 턱걸이를 늘리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철봉에 매달렸던 그때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열개를 더넘겨서 스무 개를 목표할 때 어느새 손가락이 시작되는 손바닥 곳곳에 굳은살들이 채워져 있었다. 누군가의 손을 맞잡을 때 뭔가 거칠고 까슬한 느낌이 남자답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에 뿌듯했던 그 굳은살. 그렇게 믿음직했던 굳은살은 턱걸이를 스무 개 가까이 채울 즈음 통으로 벗겨져 버렸다. 피가 나고 따가웠지만 개수를 늘려가는 재미에 쓰라림을 잊고 또 그렇게 철봉에 매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굳은살이 다시 피어올랐다.
분홍의 설렘과 따듯한 온기, 꽃냄새 찍어 바른 달콤한 바람, 생생하게 피어나는 색들은 어김없이 이 봄에 찾아왔다. 다만 예전 같지 않은 것은 내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초조해진 발걸음으로 혼자 걷다 문득 한결같은 계절에 취해서 다시금 생각했다. 정녕 변한 건 내 마음뿐이구나, 봄이 찾아와 벚꽃이 흩날리고, 몇 번의 생채기가 지나가면 그 자리에 다시 새 살이 피어날 것이라고 이 온전한 계절이 위로했다. 새 신을 신은 것 마냥 아프던 뒤꿈치 어딘가의 아린 아픔은 그렇게 한결같은 아름다운 봄날 위에서 이내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