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 덕에 조금씩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있는 요즘이다.
쪼그려 앉은 어린 꼬마는 보통 손가락으로 흙바닥을 헤집는다. 그리고 어김없이 어른들은 '지지~' 라며 아이들을 만류한다. 그런 기억이 내 어린 시절에도 꽤 많았던 것 같다. 다만 어떤 고정관념 속에서 더럽고 위험할지도 모르는 흙먼지(지지)를 나쁘다 생각지 못했다. 으레 사내다운 면모라고 생각해서일까, 머리가 큰 후에도 흙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입속에 다시 넣거나 화장실을 다녀온 후 손을 씻지 않는 일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심각했던 위생관념이 지금의 만성비염을 비롯한 각종 염증과 연관되어 있다는 개연성을 아내를 만나 알게 되기 전까지 말이다. 예민한 강아지 후각과 매의 날카로운 시각으로 더럽거나 청결하지 못한 것들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이 내 몸 곳곳에 닿으면서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3초 이후에는 일채 손을 대지 않았고, 변기커버는 꼭 닫고 물을 내렸으며 손도 열심히 닦았다.
변화된 위생 관념 때문일까, 이번 황사는 꽤나 힘들었다. 미세먼지와 황사가 많은 중국으로 기억되는 어느 거리들을 진공청소기를 손에 쥐고 거닐던 한 청년의 영상이 기억난다. 청소기로 빨아들인 거리의 공기에서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나왔고 그것으로 무지막 한 사이즈의 벽돌을 만들었다. 외부활동(면접)이 잦은 요 며칠, 벽돌만큼 흙먼지가 폐에 들어찼다고 생각되니 가슴이 답답하고 기분이 언짢았다. 이것은 분명 실패한 면접 때문만은 아니었다.
n번째 면접 이후 '안타깝게도', '다음에 좋은 기회', '다시 만나기를' 등의 레터를 받으면서 생각지도 않던 나의 고정관념을 다시 마주했다. 이름난 기업에서 꽤 나쁘지 않은 급여와 좋은 대우를 받았던 나의 경력이 새롭게 도전하는 영역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행태를 보면서 적잖이 놀랐다. 그 의미에서 나의 도전은 매우 건방지기도 했다. 전에 받던 월급에 반도 안 되는 급여를 생각하면 내 방만한 태도는 합리적이기도 했다. 얼마 주지도 않으면서 많은 것을 바란다고 생각했으며 n번째 '아쉽게도'를 전해오는 그들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렇게 몇 번을 안타까워하는 그들의 레터를 받으면서 내 경력에 대한 고정관념에 조금씩 금이가고 있다. 물론 아내는 위생적이지 못한 그 고정관념에도 지속적인 경멸의 시선을 보내온다.
헐렁한 백수의 시간 속에서 이슬아 작가를 통해서 성소수자, 사회약자, 비건등 다양한 삶의 형태를 엿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중년남성에게 아직 정의되지 않은 그 신대륙의 이야기는 분명 내 고정관념에 어떤 영향을 미친것 같다. n번째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어느 한 커플의 얼굴을 마주했다. 위화감이 들었던 건 남자의 표정 때문이었다. 뭐랄까, 지금까지 익숙하게 알던, 여성이 지을법한 표정이 그 남자의 얼굴에서 보였다. 남자라는 성정체성이 갖는 얼굴의 전형적인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앞을 더 많이 응시하는 여자, 정면보다는 옆의 여성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남자. 어떤 싸움의 징조가 전혀 없어 보이는 커플의 일상의 풍경에서 조금 무뚝뚝해 보이는 여자와 많이 상냥해 보이는 남자에게서 나는 위화감을 감지했다.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그들의 위화감을 생각하다 문득 그 위화감에 대한 위화감을 느꼈다. 동시에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미간을 찌푸린 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슬아작가의 뜨거운 시선 또한 느껴졌다.
아내와 이슬아 작가를 통해서 조금씩 나의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있는 요즘이다. 언젠가 겹겹이 쌓인 고정관념의 껍질들이 정도껏 벗겨지고 말랑말랑한 속살이 드러나 보드랍다고 느껴질때, 그 때는 아마도 백수라는 껍떼기도 이미 벗은지 오래일 것이다.